내 가설은 이렇다. 혐오에 중독된 사람들은 혐오를 통해서 자기를 긍정하고 있다. 자신은 그런 혐오의 대상과는 다르다고, 그렇게 자기보다 수준낮은 대상을 내려다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향유하는 것은 혐오 자체가 아니라 바로 혐오의 뒷면에 있는 우월감인 것이다. 실제로 혐오를 말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뭔가 잘난척하는 느낌이 든다. 그건 혐오의 뒷면에 우월감이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경멸이나 혐오는 우월감이라는 뒷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왜 혐오를 동반한 우월감에 중독되는가. 우월감은 페이스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기자랑으로 얻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남을 욕하는 것이 나를 자랑하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쉽게 우월감을 얻을 수 있다. 혐오에 중독된 사람들은 바로 쉽게 우월감을 얻는 것에 중독된 것이다. 페이스북 식으로 자기자랑을 해서 우월감을 얻으려면 노력과 돈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혐오는 아무 노력도 필요없고 돈도 들지 않는다. 

나는 헤이터도 아니지만 헤잇 더 헤이터즈 뭐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치있는 것에 반응하고 더 나아가 가치있는 반응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원래부터 싫은 걸 욕하기 보다는 외면하고 좋은 것만 생각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혐오의 주체가 이렇게 많다는 것이 좀 불편하긴 하다. 나는 싫어하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내 삶에는 혐오의 대상보다 주체가 훨씬 많다. 이를테면 난 별로 관심없고 아무 감정없는 토토가를 극혐하는 사람들이라든지. 

문제는 혐오에 중독되는 것이 부작용이 많다는 거다. 쉽게 우월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노력을 안하게 되고 좋은 것을 힘들여 찾기 보다는 싫은 것을 욕하기 위해 찾아다니게 되고 결국 삶엔 싫은 것만 가득차게 된다. 매니아들이 음악씬이 흉년일 때 냉소로 향유를 이끌어낸 것과 비슷한 함정이다. 냉소나 혐오는 너무 쉽고 쉬운 건 언제나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것을 찾거나 자기 자랑을 해서 우월감을 얻는 것은 어렵다. 그걸 위해 노력하기 싫어서 쉬운 혐오나 냉소에 중독되는 것이다. 혹은 혐오나 냉소에 중독되어서 좋은 걸 찾고 자기자랑을 위해 노력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혹은 그럴 능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페이스북 식의 자기자랑을 할 능력도 돈도 없다면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게 우월감을 얻을 수 있는 혐오나 냉소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혐오에 중독되는 이유에는 사회적 환경이나 개인의 성격만큼이나 경제적 계급이나 능력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출처] 극혐시대.|작성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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