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야구에서 가장 뛰어난 지략가는 누구일까? 위대한 선수를 꼽으라 하면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겠으나 일본 최고의 지장(智將)을 꼽는 데에는 아마 별다른 의견 충돌이 없을 것이다. 바로 ID야구(ID는 important data)의 창시자 노무라 카츠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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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카츠야의 애칭은 노무상(ノムさん)이다. 노무상이라고 해서 좌좀새키들 또 고인능욕이라고 지랄하지 않겠지? 노무라 감독은 1935년생이니까 노짱보다 훨씬 선배이다.


노무상은 1935년 쿄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군에 징집되어 만주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노짱따라갔다. 가장이 없으니 노무상 집안은 그야말로 똥꾸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노무상은 10살 때부터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형님들에 의해 야구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되었다. 스포츠를 워낙 좋아하시는 미군형님들은 독일놈들과 일본놈들이 숭고한 미국적 가치관을 배우지 못하고 독재자의 부품 노릇이나 하게 된 것은 문화에 미국적인 스포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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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전선에서 북괴를 막아낸 한국의 은인 왈튼 워커 장군 또한 학창시절 풋볼선수 출신이었다. 더글라스 맥아더는 풋볼이야말로 군인에게 가장 적합한 운동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미국의 사관학교에서 풋볼을 장려했을 뿐만 아니라 풋볼선수 출신이 아닌 장교는 승진 시키지도 않을 정도로 풋볼을 사랑했다.



미군형님들은 독일과 일본에 미국적인 스포츠인 아메리칸풋볼과 야구를 가르치는 것을 전후 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삼고 있었다. 미군형님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독일에 아메리칸풋볼을 뿌리내리려 하는 노력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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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을 한다길래 축구를 기대하고 모였던 독일인들이 아메리칸풋볼이라는 사실을 알고 노무룩해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 야구를 보급하는 일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일본인들 성격에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야구는 노무상에게도 딲! 들어맞았다. 중학생 시절 영화관에서 처음 본 '야구'라는 스포츠에 반한 노무상은 야구를 노무노무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노무상이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야구부가 생겼다. 그리고 노무상은 두번 생각하는 법 없이 야구부에 가입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크고 (육체노동으로 다져진) 체력이 좋다는 이유로 시합 내내 쭈그려 앉는 포수를 맡게 되었다.

일본에 프로야구가 생기자 노무상은 당연히 프로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노무상은 고향에서는 상당히 알아주는 선수였다. 문제는 노무상이 다니는 학교가 전국대회 문턱도 가보지 못한 약체팀이라는 점. 약체팀에서 좀 잘한다고 해서 프로구단들이 노무상을 주목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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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체팀에서 혼자 잘하는 기분ㅋㅋㅋㅋ 저도 그 기분 잘 압니다.



그러나 프로선수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노무상은 각팀들을 조사하다가 난카이 호크스(지금의 소프트뱅크스의 전신)라는 팀에 주전 포수가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난카이에 직접 이력서를 보낸 노무상의 바램은 이루어졌다. 난카이에서 포수 자원을 육성하려고 노무상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수가 아니라 연습생 계약이었다. 연습생이란 소위 '3군'으로 불리는 것으로서 연봉은 없고 숙식과 연습환경만을 제공하여 실력이 오르면 그때 정식으로 계약을 맺자는 내용. 그래도 노무상은 프로선수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연습생이 되었다.


1년이 지나자 난카이 호크스의 프론트에서 노무상을 불렀다. 정식 계약인가 싶어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담당자는 노무상 보고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이때 그 사람이 한 말은 "자네는 야구에 재능이 없다. 아직 젊으니 새로운 길을 찾아보게. 나는 수많은 야구선수들을 보아왔으니 내 눈은 틀림없어. 내 말대로 하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쇼크를 받은 노무상은 단원고 방식으로 버텼다. 연습생 계약을 1년 더 연장해주지 않으면 철로에 뛰어들어 자살하겠다고 을러댔다. 보상금과 대학특혜에 눈이 먼 윾가족들의 얄팍한 생떼와는 차원이 다른, 자신의 인생을 건 노무상의 최후통첩을 받고 난감해하던 담당자는 결국 1년 더 연장해주기로 하였다. 이로서 일본야구 최고의 지략가가 자살로서 노짱따라가는 사태는 면하게 되었다.


노무상은 무엇이 자신의 문제인지 연구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노무상은 미국에서 야구 관련 서적을 직접 구해다가 번역해가며 읽었다. 파워를 키우기 위해 당시 일본에서는 생소한 웨이트 트레이닝도 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365일을 일베 따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계발에 투자한 결과, 노무상의 실력은 크게 발전하여 난카이 호크스의 프론트도 노무상과 2군 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하늘은 준비가 된 사람만을 돕는다던가. 노무상의 실력이 일취월장하자 행운도 뒤따랐다. 1군 주전포수가 부상을 당하고, 1순위 후보 포수는 트레이드 되고, 2순위 후보 포수가 데드볼에 맞아 입원하자 3순위 후보 포수 노무상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난카이는 재빨리 노무상을 1군으로 불러올렸다.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겠다고 선언한지 2년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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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1군에 간 노무상은 1군 선수들의 노무노무 뛰어난 기량에 놀랐다. 운동신경으로는 다들 노무상을 압도하는 넘사벽들 뿐. 그러나 어떻게든 야구선수로서 대성하고 싶엇던 노무상은 기발한 발상을 해낸다. 투수가 여러 구종을 구사하기는 하지만 투수도 사람이니까 역시 좋아하는 볼배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노무상은 찐따처럼 방구석에서 상대팀 선발투수들의 투구 내용을 복습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노무라식 ID야구의 시작이었다.


옛날에 김성모 만화의 주옥같은 명대사들 중 하나로 럭키짱의 '너의 공격패턴을 알아냈다'가 자주 등장했는데 노무상이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투수의 공격패턴을 알아낸다 그러니 당연히 다들 피식 했겠지만... 이게 먹혔다(!!!!). 투수의 버릇을 간파한 노무상의 방망이는 그때부터 불을 뿜기 시작했고 1965년에는 타격 3관왕(최고타율, 최다홈런, 최다타점)을 거머쥐었다.


노무상의 ID야구는 타격 뿐만 아니라 포수로서도 빛을 발했다. 타자가 선호하는 볼이 있을 거라고 파악한 노무상은 타자들의 기록을 검토하여 타자들이 싫어하는 공을 주문하는 '포수 리드'로 또 한번 야구계에 혁신을 가져왔다. 공수 양쪽에서 난카이 호크스의 에이스로 자리잡은 노무상을 보고 옛날에 노무상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던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군... 자네에게는 많이 배우고 있네."

그렇다. 노무상은 그때까지의 야구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타입의 선수였던 것이다.




노무상도 나이가 들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일본시리즈 우승을 해내는 강팀으로 변모시키고 또한 최약체 라쿠텐 이글즈를 재건한 일 등은 노무상의 지도자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상이 단순히 데이터만 강조하는 주입식 교육을 시킨 것은 아니다. 노무상에 의하면 사람은 세가지 타입이 있다고 한다.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 포상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 논리적인 지략가 노무라는 물론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을 선호했지만 자기와 맞지 않는 선수도 제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퇴물 소리를 듣고 쫓겨난 선수들을 다시 활약할 수 있도록 재생시키는 일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 감독 시절의 노무상은 '노무라재생공장'으로 불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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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마사히로와 같이 활동했던 라쿠텐의 포수 시마 모토히로. 노무상은 자신의 ID야구를 이해하고 투수들을 잘 활용할 포수를 육성하기 위해 포수들의 학창시절 성적표를 비교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시마가 가장 성적이 좋았다. 덩치가 작은 시마를 주전포수로 발탁한 이유는 "머리가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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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상은 현역 시절 자신이 명성높은 포수였기 때문에 특히 포수의 육성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시합 도중에 노무상의 잔소리를 들으며 기합이 바짝 들어간 시마. 시마는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이다.



한때 공갈포였으나 노무상에 의해 강타자로 되살아난 야마사키 타케시. 무식하게 생겼는데 생긴값을 한다고 전형적인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타입'이다. 노무상은 퇴물소리를 듣던 야마사키에게 4번타자를 맡겨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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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가 연습 때에는 뻥뻥 홈런 잘만 날리는데 시합만 되면 헛스윙을 한다. 그래서 노무상이 야마사키에게 물었다.

"너 공 칠 때 무슨 생각을 하냐?"

야마사키의 대답은 간단했다. "생각할 게 뭐 있습니까. 그냥 날리면 되죠."

이 말을 할 당시의 야마사키는 (학생시절까지 합쳐서) 야구경력 20년째였다. 노무상 가라사대,

"투수들은 생각을 하고 던지는데 넌 생각을 안하고 치니 맞을 리가 있냐. 앞으로 넌 내 곁만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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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야마사키에게 끊임없이 ID야구를 가르쳤다. 그랬더니 야마사키는 한시즌 홈런 43개를 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다.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은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이해하고 설령 불만이 있어도 그것을 억누를 줄 안다.

포상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은 포상을 약속하고 그만큼 철저한 성과를 주문한다. 인정머리 없어 보이지만 이러한 유형의 인간은 오히려 성과에 따라 포상을 받는 일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은 먼저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칭찬에 약한 사람이 이런 유형이다. 노무라는 평소 무뚝뚝하지만 칭찬해야 할 때에는 아낌없이 칭찬하는 유연한 태도로 약팀을 강팀으로 만들었다.


노무상은 인재육성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시라고 말한다. 선수들을 공평하게 무시해야 자만하는 선수도 없어지고 충성경쟁을 하는 선수도 없어진다.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단계가 가장 좋다.

그 다음에는 칭찬한다. 칭찬받은 선수는 자기가 무시당하는 줄 알았는데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러나 노무상은 '칭찬이란 그만큼 기대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일축한다. 칭찬을 통해 장점을 키움으로서 실력을 키울 수 있지만 단점은 그대로이며 아직 일류가 되기에는 멀었다.

인재 육성의 마지막 단계는 질타이다. 큰 기대를 걸기 때문에 질타하는 것이다. 한마디의 칭찬도 허투로 하지 않고 한마디의 불만도 이유없이 말하지 않는다. 감독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선수들은 이 마지막 단계인 질타를 견디지 못한다. 이 질타를 받아들여 단점을 고쳤을 때 비로소 일류 선수가 되는 것이다.



노무상 감독 시절을 크게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눈다면, 전반기 때 노무상이 키워낸 최고의 작품은 일본 최고의 두뇌파 포수 후루타 아츠야이고 후반기의 최고 작품은 마-쿤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다나카 마사히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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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상과 후루타. 후루타 정말 무서운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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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상과 마-쿤



선수들을 차별없이 고르게 무시하기로 유명한 노무상도 다나카만은 손자처럼 아꼈다. 다나카도 라쿠텐이 일본시리즈를 재패했을 때 당시 감독이던 호시노 센이치가 아니라 노무상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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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상은 고령으로 야구 감독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일게이들이 노무상에게서 노무노무 배워야 할 점.

1.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던 해라. 그것이 발기찬 삶의 조건이다. 금수저흙수저 상관없다.

2. 넘사벽이란 없다. 연구하는 게 귀찮으니까 넘사벽 소리를 해서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방법은 있다. 노무상은 172cm인데 3관왕 기록했다.

3. 자기의 장점이 통한다고 자만하지 말고 약점을 고쳐야 한다. 언젠가는 그 약점이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상은 감독 때에는 무뚝뚝한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농담도 잘하고 촌철살인의 달변가이다. 다음은 노무상 어록들.


-프로에게 결과는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신기한 승리는 있지만 신기한 패배는 없다.

-재능에는 한계가 있으나 두뇌에는 한계가 없다,

-'노무라 야구'는 곧 '준비하는 야구'입니다.

-뛰어난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역대 위대한 선수들과 자신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은 작은 자존심.

-한계에 부딪혔을 때 포기하는 사람과 돌파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거기서 만들어진다.

-선입관은 죄, 편견은 악.

-감독이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장점과 단점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노력이란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때린 사람은 잊지만 맞은 사람은 잊지 못한다는 말 그대로 타자는 자기가 친 홈런만 생각하나 투수는 반드시 타자의 공략법을 연구해온다. 따라서 투수에 대한 데이터를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또 홈런을 칠 수 없다. 타석에 들어서면 투수를 얕보지 않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강한 타자의 조건이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인기를 모을 필요는 없지만 신뢰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실패도 미래에 도움을 주는 실패가 있다. 그러자면 실패의 원인을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원인만 알면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오늘 칭찬 받았다면 내일은 욕을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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