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은 존경을 받는 것 같지만

사실 부하들은 계속 대장의 약점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두려워 하는 것 같지만 깔보고 있고,

친밀한 척 하지만 경원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 사랑을 받는 것 같으면서도 미움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부하를 녹봉으로 붙들려 해도 안 되고, 

비위를 맞추려 해서도 안된다.

부하를 멀리하거나, 너무 가까이 해도 안 된다.

또 화를 내도 안되고, 방심해서도 안 된다.

 

부하가 반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심복(心腹)이란 것인데 

심복은 사리를 초월한 데서 생겨난다.

 

감탄하고 또 감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장이 좋아서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의 행동이 가신들과는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유능한 가신들을 모두 빼앗기게 된다.

 

가신들이 쌀밥을 먹는다면 너는 보리쌀이 많이 섞인 보리밥을 먹도록 해야 한다.

가신들이 아침에 일어난다면 너는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인내심도 절약도 가신을 능가해야 하고,

인정도 가신보다 많이 베풀어야 비로소 가신들이 심복하고 너를 따르며 곁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대장으로서의 수업은 엄격해야 하는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들 나가마쓰에게 활쏘기 훈련을 시키고 나서, 

왜 대장이 될 사람은 남들보다 혹독하게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를 말할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 명언

 

1.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먼 길과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라.

 

2.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알면 오히려 불만을 가질 이유도 없다.

 

3.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이고, 분노는 적이다.

4.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른다면 반드시 해가 미치게 된다.

 

5. 오로지 자신만을 탓할 것이며 남을 탓하지 말아라.

 

6. 모자라는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

 

7. 자기의 분수를 알아라.

 

8. 마음에 욕심이 차오를 때는 빈궁했던 시절을 떠올려라.

9. 풀 잎 위에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새가 울지 않으면 한 칼에 베어버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고.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고.
다케다 신겐은 새가 울지 않으면 않는대로, 울면 우는대로 놔두었다.

이 명언의 경우, 이해못하는 사람이 많기에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무관들의 성격을 소쩍새가 울지 않으면 어떻게 대처하는 가에 비유했다. 결국 소쩍새가 울지 않았을 때 울 때까지 기다린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일본을 최종 통일하게 된다.

첫째 무관은 일방주의다.

힘으로 밀어붙이고 힘으로 제압하는 약육강식의 생리에 의존하는 삶의 방식이다.
어쩌면 이 시대의 우리 모두는 힘만 있다면 한칼에 베는 방식을 선택하고 싶을지 모른다.

이 방식을 결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적 양식이 발달해서가 아니라 한 칼에 벨수 있는 힘이 없기 대문일 수도 있다.



둘째 무관은 전략적이다.

한방에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방에 끝낼 힘이 없을 때, 그 힘의 공백을 용의주도한 전략으로 보완하면서, 주관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이 유형이다.
그러나 첫째 무관과 그 욕망이 질적으로 다를 바는 없다.

다만 우회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용의주도함이있다는 점이 다르다.



셋째 무관도 주관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데서 전략적이다.

그 점에서는 둘째 무관과 다르지 않다.

흔히 이런 유형을 덕장(德將)이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덕장(德將)은 아니다. 덕장은 덕망높은 장수란 뜻이다.

전략 중에서도 최고의 전략가다.

말하자면 남들이 보아서 전략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전략을 구사하면서 끝내 흡수동일의 야먕을 실현한다.

둘째 무관과의 차이는 승리의 결정적 시점을 포착할 때까지는 포용이라는 덕망으로 자기의 야망을 철저하게 감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본 첫째 ,둘째, 셋째 무관들은 어떻건, 정벌에 의한 것이든, 회유에 의한 것이든, 자신의 야망과 주관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다를바 없다.

다만 그 실현기법과 전략의 기술적 수준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그 차이라는 것이 결코 작은것일 수는 없지만…


이제 넷째 무관을 보자,

이 경우는 앞의 경우들과는 전혀 다르다.

주관을 상대에게 이입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며, 또 상대를 전략적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주관을 절대화 하지않고 주관을 상대화 한다.

주관과 객관을 등가적으로 위치시킨다는 이야기다.

최소한 상호주관의 관계성, 상응의 관계성을 갖고있다.

간명하게 관계의 미학을 말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달리 말해서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넘어가는 탈 중심화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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