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 (홍세화 편지)

젊은 벗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 사회구성원들은 한겨레신문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대부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령 한겨레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나오는 책과 지성 특집면인 18도를 읽어 본 사람은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한겨레신문이 어떤 신문인지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읽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정보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한국사회구성원은 한겨레신문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물론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입니다.

한국사회 구성원은 민주노총에 대해, 전교조에 대해, 공무원 노조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알 필요가 없는 것으로입니다.

이미 부정적으로 의식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어떤가요? 한국 사회구성원이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요? 물론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하고 있다는것쯤은 이제 거의 모든 한국사회 구성원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접근해선 안 되거나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입니다. 사민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사회주의든 사민주의든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마르크스의 명제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유 입니다. 이미 의식화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으로.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한번밖에 오지 않는 삶, 그 삶을 유지해 주는 것은 건강한 몸이고 그 삶의 지향을 규정하는 것은 의식세계 입니다. 그런데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삶의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몸의 건강에 대해서는 엄청난 관심을 갖는데 반해, 삶의 지향을 규정하는 의식세계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신문화라면 세계에서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몸보신에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데 반해, 나의 의식세계가 나라는 존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이율배반 입니다. 그러나 이점 또한 이미 의식화가 이루어졌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의식화가 이루어졌을까요? 의식세계니 가치관이니 세계관이니 하는 것에 관심 갖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입니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인문사회과학을 멀리 하는 것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관철 입니다.

한편, 내 몸의 형성은 일차적으로 내가 건사하고 내가 어렸을 때엔 부모님이 건사해주었습니다. 나와 부모는 서로 위하는 목적의 관계입니다. 의식세계의 형성은 다릅니다. 나의 의식세계를 내가 주체적으로 형성하지 않을 때, 부모님이 내 의식세계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으며 내 의식세계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이 점령하게 됩니다. 즉, 나의 의식세계는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지배세력을 위한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나와 지배세력의 관계는 서로 위하는 목적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나의 의식세계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지배세력을 위한 것이지만, 나의 의식세계는 그것을 알아차릴 비판력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이미 의식화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형성하고도 그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의식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부디 젊은 벗은 이 폐쇄회로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대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다시금 인문사회과학 책을 벗하길 강조합니다.

이 글에 공감하시는 분들께, 한국사회의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 복사하셔서 많이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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