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실험은 1971년 미국에서 '필립 짐바르도'라는 스탠포드 대학교수가 주도한 실험이었습니다. (구인광고를 통해서 실험차가자를 모집한것은 사실입니다. 실제 미국 심리학 실험의 참가자는 구인광고를 통하여 모집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악한 본성을 드러내게 만든 실험으로 '밀 그램'이 1963년도에 실시한 '전기충격실험'과 함께 유명한 실험입니다. 실험은 예상했던것과 너무 다르게 흘러가게 되어 6일만에 중지하게 됩니다. 자세한 실험 내용은 밑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실험의 시작>>


1971년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과의 Zimbardo 교수는 ‘교도소의 생활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신문지에 내고 지원자를 모았습광고를 지역 니다. 광고 후 70여명의 지원자가 연락을 해왔고, 이후 간단한 정신과적 면접과 성격 검사를 실시해서 심리적인 문제가 있거나 병력이 있는 사람은 제외시켰습니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 이전에 범죄나 마약과 관련한 전과가 있는 사람들도 제외시켰죠. 이런 심사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24명의 실험 참가자가 결정되었고, 실험에 참가하는 대가로 하루에 15불 정도의 금액을 받기로 했습니다.

우선, 선발된 24명에 대한 기본 프로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실험 참가자로 선발될 때 앞서 말씀드린 검사나 면접외에도, 참가자들간 이질성을 최소화하고 가능한한 일반인, 보통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인 수준이나 지능, 건강 조건도 비교적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는 계층으로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동질적인 구성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후 한 집단은 교도관의 역할을, 다른 한 집단은 죄수의 역할을 맡기려고 했습니다. 결국, 죄수냐 혹은 교도관이냐 하는 집단의 분류는 임의적인 것이었지, 결코 두 집단간의 유의미한 차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실험이 진행될수록 이 두 집단은 정말로 놀라운 모습으로 다르게 변화해간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차차 말씀드리죠.

Zimbardo 교수는 교도소 환경과 가장 유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이전에 장기 복역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적이 있는 사람을 섭외해 필요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과 건물의 한 쪽 복도 끝을 막아, 감옥 셋트를 만들었습니다. 실험이 시작되면 복도는 죄수(실제 죄수가 아닌 죄수 역할을 하기로 한 참가자들)가 거닐거나 식사, 운동들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됩니다. 그리고 화장실은 죄수들이 수감되는 방에서 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하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참가자들은 이곳이 진짜 감옥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 눈을 가린 채 이곳으로 데려오게 되죠. 그래서 그곳이 스탠포드 대학내 임시로 만든 감옥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한 것이죠. 그리고 이 복도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나 시계를 놓지 못하게 해서, 여기가 어딘지,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소품들도 모두 감옥과 동일하게 만들었습니다. 3개가 있던 감방의 반대쪽에는 매우 작아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어둡고 작은 공간을 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실험장소인 교도소가 다 만들어진 후에, 참가자들은 이미 협조가 요청된 경찰의 인도로 실험실로 옮겨지게 됩니다. 물론 죄수역을 맡은 참가자들에게는 실험실이 급조된 교도소가 아닌 아닌 스탠포드 주립 교도소라는 안내를 하고, 이를 위해 눈을 가린 채 데리고 옵니다.

교도관으로 참여한 참가자들은 교도관의 역할에 대해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고, 연구에서도 이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법적으로 타당한 선에서, 그리고 죄수들을 존경하는 선에서 감옥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고 얘기만을 들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서서히 교도소 안의 규칙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셋팅을 만들고 교도관과 죄수들의 역할 설정을 하면서 교도소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실험 이틀째의 날을 맞게 되는데, 그날 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교도소, 정확히는 실험실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이날 아침 예상치 못한 죄수들의 집단 행동이 발생했습니다. 아침이 밝자 죄수들은 모자를 벗어버리고, 죄수복에 달려 있던 숫자를 잡아뜯는가 하면 감방 안에서 문을 향해 침대로 바리케이드를 친 채 방어 태세를 갖추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도관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하고조롱하기까지 했죠. 첫날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갔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행동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여기는 감옥이 아닌 실험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이 폭동에 대한 교도관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앞서 여러 번 강조했던 점이 있죠? 실험에 참가하기 전 이들은 교도관이나 죄수나 모두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감옥이니 교도관이니 하는 것에 대해 전혀 사전 지식이 없던 이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수와 교도관이라는 구분은 그저 임의적인 구분에 불과한 것들이었죠. 그런데, 둘째 날 죄수 역의 참가자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교도관 역할의 참가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사태를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험 전에는 단 한번도 교도소에 다녀오거나 교도관을 만난 적도 없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교도관들은 일단 소화기를 가져와 죄수들을 향해 뿌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피부의 온도를 낮추는 하얀 분말의 소화액이 발포되자 죄수들은 문에서 떨어져 밀려날 수 밖에 없었고, 교도관들은 이틈을 타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죄수들을 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도관들은 죄수들의 옷을 모두 벗기고, 감방 안에 있던 생필품들, 침대와 담요 등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 낸 후 알몸인 상태로 죄수들을 감방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폭동을 주도했던 죄수들을 모아 독방에 집어넣었죠. 죄수들에게 가하는 체벌로는, 한 명씩 불러내어 push-up을 시키고 나머지 죄수들을 모두 벽을 바라보고 서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push- up 정도는 체육 시간에도 하는 거고 건강 삼아 혼자서도 곧잘 하는 거라, 이게 체벌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당시에 연구자들도 그러한 생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곧 연구자들은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죠.



체벌일까 싶었던 바로 그 push-up, 한 사람이 이를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벽을 향해 서 있어야만 하는 바로 이러한 체벌이, 실제 교도소, 그것도 그 악명 높았던 나찌의 수용소에서 존재했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한끝의 차이도 보이지 않고 스탠포드 감옥에서의 체벌과 나찌 수용소에서의 체벌이 똑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었습니다. 차이라면, 나찌의 수용소에서는 우리가 전쟁 전범이라고 하는, 극악무도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독일군 장교들이 유태인에게 그러한 체벌을 가했던 데 반해, 스탠포드 감옥(대학)에서는 이틀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평범하고 순진했던 청년들이 똑같은 청년들에게 체벌을 가하고 있다는 점뿐이었죠. 놀라웠던 점은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교도관의 임무나 전반적인 업무 스케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싶었던 참가자들은 어느새 기존 교도소에서 행해지는 교도관의 업무 스케쥴을 정확히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자발적으로 3명의 교도관들이 나서서 야간에 당직을 서기로 했고, 3교대로 9명의 교도관들이 번갈아 가며 한시도 놓치지 않고 죄수들을 감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무도 지능적인 심리적 진압 방법까지 동원하면서 말이죠.



폭동과 그에 대한 진압을 계기로 교도소의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죄수들은 그들 사이에 팽배해진 불신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 교도관들은 몰라볼 정도로 강한 결속력을 가지게 됩니다. 교도관들은 죄수들이 실제로 문제가 많으며, 반드시 다스려져야 하는 망나니처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탄압을 보다 강화하기 시작했죠. 심지어 죄수들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막아, 허락을 받아야지만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감방안에 양동이를 하나 주고 거기에 대소변을 보게 했죠. 그러나 곧 감방은 오줌 냄새와 변냄새로 가득차게 되고, 2일만에 환경은 최악으로 치달아 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실험이 시작된 지 36시간만에 죄수 역의 참가자는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심한 정서 장애 및 혼란스런 사고와 감정을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거나 웃고, 분노감에 차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등 문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사람의 처우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를 면담했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못한 채 다른 죄수들에게 “아무도 여길 떠날 수 없어. 이걸 멈출 수는 없다구”라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미쳐가는 것 같았죠. 결국, 연구자들은 실험 중간에 그를 풀어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풀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나간 후 감옥 안에는 묘한 루머가 돌기 시작했죠. 그가 풀려난 것이 아닌 탈주였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다른 죄수들도 탈주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 얘기는 교도관들에게도 그리고 연구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연구자들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전략 회의를 가지고, 죄수들의 안전을 위해 이들을 살필 장치를 하고 탈옥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냈습니다. 또한 그러한 루머가 돌던 방안에 정보를 미리 알려줄 수 있는 밀고자를 두기로 결정하고 이를 시행하기도 했죠. 이전에 비해 더 많은 교도관을 두고 죄수들을 감시하고 이들을 함께 묶고, 머리에 자루를 씌어 두기도 했죠. 그리고 어떻게든 탈주가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보안책을 강구하는 데 더 열심이었습니다. 자, 이 연구자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실험 중에 연구자의 동기 하나가 실험실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변한 상황을 놀래서 바라보고는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뭘 실험하고 있는 거지?”라고요. 그 순간 연구자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정말이지 크게 놀라게 됩니다. 즉, 그 며칠 사이에, 연구자들은 어느새 연구자, 심리학자가 아니라 또 다른 교도관, 감독자의 역할을 하면서 죄수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거죠. 연구자들조차도 당시에 다른 교도관들처럼 죄수들이 반드시 도망을 칠 것이며 해를 끼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이 인식을 하기도 전에 말이죠. 실험에 대해 Zimbardo 교수의 얘기를 빌면, 당시 실험에 참여하지 않은 동료가 실험 과정을 지켜보며,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도덕적으로 어떻게 이런 실험을 계속 진행하느냐?”라고 항의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리고 그 자신도 실험의 도덕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미 연구자들도 더 이상 연구자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관찰자의 위치가 아닌 거대한 심리적 장치안으로 빨려들어와 있었던 셈이죠. 마치 교도관이나 죄수들처럼.

실험 5일째로 접어들면서 일부 교도관이 죄수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고, 교묘한 방식으로 이들을 고문하고 체벌하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죄수들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 그들의 부모들이 찾아와 이들을 빼내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포고를 하기도 했다는군요. 심한 정신과적 증상을 보이는 죄수들이 속출하기 시작하는 등 상태가 악화 일로를 걷게 되자, 결국 실험은 6일만에 중단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의 결과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학계에 보고되면서 큰 충격을 일으키게 됩니다.
실험이 일으킨 가장 큰 파장은 진정한 휴머니즘이란 없다는 것, 누구나 상황에 의해서 악인이 될 수도 선인이 될 수도 있다는 뼈아픈 인식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는 대학 때, 처음 이 실험에 대한 얘기를 듣고, 학자 혹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실험 상황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현실과 관련지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현재 교도소라고 하는 사회적 격리 장치가 죄수들의 인권을 보호하거나 그들의 재활과 갱생을 위한 긍정적인 장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죄수들을 통제하기 위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환멸스럽고 고통스러운 조치로, 그곳에서 진정 갱생과 재활이 이루어 질 수 있을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겁니다.




"나는 최근(출감한지 37개월)에야 교도소 독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감옥 안에서 난 늘 침묵해야 했다. 옆 감방 사람에게 속삭이기라도 할라치면 곧 교도관의 곤봉과 매가 등과 어깨로 쏟아지곤 했다. 그리고 내 몸에 이나 다른 벌레들이 있다고 벌거벗긴 채 뿌려지는 살충제. 그리고 맨 바닥에서 이불도 침대도 없이 알몸으로 자야했고 맨 손으로 화장실 변기를 닦아야 했던 시간들. 나는 도둑이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도둑이라도 절도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감옥 안에서 결코 재활이나 갱생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출감할 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건 유일하게 나를 때린 사람, 나를 마치 개처럼 취급한 그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다. 나는 내가 그런 잔혹함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정상적인 도덕성을 되찾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너무나 잔혹했다.“


- 미국에서 실제 교도소 생활을 했던 어느 죄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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