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사람의 본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학문이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서 심리학의 실상을 접하고나면 실망할지 모른다. 아니, 대부분 실망한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가르치는 미국식 심리학은 사람에 대한 공부라기 보다는 동물에 대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김태형(46)씨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 우연히 접한 '에리히 프롬'이라는 학자는 그를 심리학으로 이끌었다. 부랴부랴 뒤늦게 공부에 전념한 그는 재수 끝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서 배우는 심리학은 그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생각했던 것과 엄청나게 달랐어요. 미국 주류심리학, 특히 행동주의를 대학에서는 주로 가르쳤어요. 동물에 관한 것을 주로 배우고 인간을 아주 수동적인 존재로 다뤘습니다. 인간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들을 많이 가르치니까 엄청나게 실망했죠. 나 뿐만 아니라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들어온 제 동기들 대부분이 실망했어요. 그런 친구들은 심리학을 끝까지 하지 않고 중도반단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원숭이들이 이럴 때 이러하니 사람도 이럴 때 이런 것이다라는 결론이 미국식 심리학이었다.

심리학자 김태형씨

심리학자 김태형씨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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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에 대한 염증은 복잡한 시대상과 맞물리면서 그는 학생운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슬퍼런 전두환 독재정권시절이었다. 1학년 1학기 내내 학생운동을 피했던 그는 '전태일 평전'을 읽고나서는 더이상 숨을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진해서 운동을 하던 선배를 찾아갔다. 그때가 1984년, 1학년 2학기 때였다.

"나는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다 걸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대충 못하죠. 엄청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사심없이 열심히 운동을 했죠."

고대에는 '반미청년회'라는 서클이 있었다. 그도 여기에서 활동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인영 전 국회의원 등이 이 서클 출신 선배였다. 

졸업할 무렵이 되어 그는 대학원으로 진로를 잡았다. 개인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진출했지만 심리학 공부는 여전히 흥미를 갖기 어려웠다. 대학원에서도 학부시절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복잡한 시국도 그를 부추겼다. 현장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최전방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그를 노동운동 현장으로 잡아끌었다.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주변의 친구들이나 교수들이 다 말리더라구요. 그래도 91년에 대학원을 자퇴하고 92년에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가방 끈이 긴 그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다들 그러했듯 그도 신분을 숨긴채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다. 그가 활동한 지역은 서울 성수지역. 조그마한 중소기업들과 영세업체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었다. 서울동부지역금속노동조합에서 활동을 하면서 조합원들을 조직했다. 이때 노동운동을 하던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 등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이 당시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91년에는 책도 냈다. '기름밥 청춘의 노래'라는 제목의 이 책은 실명 대신 가명으로 발간됐다. 학생 출신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조직하던 경험을 담은 책이었다.

어느 정도 노동운동은 자리를 잡았지만 정체를 겪었다. 

"어떤 조직이든 정체는 곧 퇴보하는 것이거든요. 참 어려웠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까지는 키웠는데 더이상 발전이 안됐어요."

때마침 가정생활도 엉망이었고, 건강도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 궤양성 대장염 말기였다. 하루에 7~8번 장출혈을 일으켰다. 화장실에 가면 시뻘건 피를 쏟아냈다.

"화장실을 나올 때면 하늘이 노랗고 몸이 비틀거렸어요. 당시에는 '나는 적어도 죄 짓고 산 적은 없다. 이제 할 만큼 했다. 때가 됐으니 가야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때는 완전 우울증이었습니다. 죽는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때가 2003년 무렵이었습니다."

운신도 자유롭지 못하던 때였다. 94년 벌어진 조직사건의 여파로 그는 공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문들에는 '조직사건의 수괴'로 그의 실명이 거론됐었다. 공개수배는 아니었지만 안기부에서 그를 찾는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때 잡혀갔던 친구들이 안기부에서 계속 나에 대해 물어봤다고 하더라구요. 자수시키면 후하게 해주겠다고도 하고. 그런 얘기들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정황을 봤을 때 옛날부터 나를 주시했었던 것 같습니다."

2003년, 국가보안법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자 그는 일부러 잡혔다. 마침 병역기피로 수배중이었다. 그를 조사하던 경찰은 그가 '비공식 수배'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안기부에 확인을 하더니 태도가 바뀌었다. 경찰서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공소시효는 이미 끝나있어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할 수 없었다. 병역기피 문제도 그는 영장을 받아본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받지 못했다. 그는 다음날 '훈방'으로 풀려났다. 운이 좋았다. 

그 다음날 동사무소를 방문해 주민등록증을 만들면서 그는 신분회복을 할 수 있었다. 

운은 이어졌다. 대학 동창이자 임상심리학을 하던 전양숙 선생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 문제 때문에 심리 상담을 받았다. 첫애가 과잉행동장애(ADHD)였다. 그런데, 상담을 받다보니 자신의 상태가 심각한 우울증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때 심리학에 다시 흥미를 갖게 됐다. 심리학에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다시 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장출혈 치료도 할 수 있었다. 서양의학에서는 불치병으로 여기는 궤양성 대장염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만성 재발성 질환이다. 다행히 한의학의 도움을 받고 식이요법으로 치료를 해서 조심만 하면 재발이 되지는 않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다 죽어가다 겨우 살아난 것이다. 이게 몇 년 걸렸다.

건강을 회복하면서 전양숙 선생의 도움을 받아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다시 심리학에 눈을 뜨게 되면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 주류 심리학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로 펴낸 책이 2005년에 쓴 '부모 나 관계의 비밀'(새뜰심리상담소)이라는 책이다. 두번째로 쓴 책이 '성격과 심리학'. 미국 주류 심리학을 비판하는 '스키너의 심리상자 닫기'도 빼놓을 수 없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책만 모두 9권, 발간을 앞둔 책이 2권이다. 집필작업에 정력적으로 매진한 덕에 1년에 2권 꼴로 쓸 수 있었다.

"제일 애정이 가는 책은 '새로 쓰는 심리학'입니다. 기존 심리학을 내가 가진 관점과 입장에서 쓴 것이니까, 제일 안 팔린 책이지만 제일 애정이 가는 책이죠. 나름대로 나는 역작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가면 알아줄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인물분석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가 쓴 책만 봐도 이런 사실은 잘 드러난다. '성격과 심리학'에서 시작된 관심은 역사적 인물들을 분석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나온 책이 ▲베토벤 심리 상담 보고서(2008.8.7/부키)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2009.4.10/역사의아침) ▲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2009.8.10/예담) ▲심리학 삼국지를 말하다(2010.7.16/추수밭) 등이 있다.

그가 인물분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기존 심리학자들이 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다루고, 그것을 일반화해서 사람을 설명했는데, 인간의 어두운 면만을 다뤄온 겁니다. 이제는 미국 심리학자들 내에서도 인간의 밝은 면을 다뤄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맞습니다. 그런데, 미국 학자들이 말하는 밝은 면이 내가 보기엔 밝은 면이 아니에요. 인본주의도 비슷하지만 내가 볼 때는 성공을 못했습니다. 병든 인격이 아닌 건강한 인격을 중심으로 한 심리학 이론이 성공을 못했어요. 나는 그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병든 사람은 병든 사람대로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대로 균형을 맞춰보고 싶었습니다. 인격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분석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보니까요."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인물분석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을 격찬 한 바 있다. 진보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그가 진보진영에서 비판을 강하게 받았던 전직 대통령을 이처럼 격찬한 이유는 뭘까 궁금해졌다.

"건강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기회가 있어요. 심리적으로 건강하면 나이가 중년이 되든 노년이 되든 자기 인생을 올바로 바꿀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진보적 운동을 했어도 결국은 나락으로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남북통일이 되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가 된다면 보수건 진보건 이런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요. 인격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런 사회를 지지하겠지만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그런 사회에서도 파벌이나 분파를 형성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측면은 심리학적으로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정책적으로는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심리적 건강 측면에서 보면 쉽게 사람이 변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아무리 우리 편이라고 해도 마음이 병든 사람은 잘 믿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사고를 칩니다. 오히려 우리랑 정치적 입장이 같으면 마음이 병든 데도 감싸주고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마음이 건강해도 내치고 그러는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김구 선생은 얼마나 악질이었습니까? 그런데 말년에 바뀌지 않습니까. 기본이 되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김태형씨

심리학자 김태형씨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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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분석에 집중해서 얻은 성과는 뭘까?

"의외로 훌륭하고 건강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존경할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베토벤 같은 사람을 존경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존경할만한 사람이 널려있어요. 건강한 인격을 기본으로 했을 때 기존의 심리학 이론이 바뀌어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중심으로 만든 이론은 대폭 수정돼야 합니다. 세상에 희망이 남아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요."

내친김에 그가 분석한 인물들에 대해 들어봤다. 주의할 점은 여기서 분석은 대상의 가치관과 신념을 기준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심리적 건강성을 기준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이다. 인격이라는 표현도 심리적 건강성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에 주의.

그는 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에 대해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최소한 '부와 향락을 위해서 돈을 번 사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무식하게 살다가도 정치적 의식이 싹트면 달라져요. 나중에 사회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변한 이유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바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벌어서 사치스럽게 산 적도 별로 없고요."

이병철 삼성 창업주나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도 정주영 회장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건강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적인 바탕은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김우중도 그렇고. 이병철은 와세다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어요. 막스 책도 많이 봤다고 자서전에 썼죠. 이병철은 와세다대학 일년 선배였던 이수근씨와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병철은 지주집안 아들이니까 계속 운동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병에 걸렸습니다. 한국으로 도망쳤죠. 그런데도 이수근씨와의 인연은 쉽게 안끝나요. 좌익운동가 이수근씨를 삼성상회 지배인으로 앉혔습니다. 아예 인감도장까지 맡길 정도로 신임했습니다. 해방이 되니까 이수근은 회사를 그만 두고 좌익활동을 하다가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병철은 죽기 1년전에 쓴 자서전에서 여전히 이수근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병철이 이수근씨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케하는 거죠. 이병철은 '사업보국'을 하겠다고 결심했었다는데, 내가 분석해보니까 그건 맞는 것 같아요. 노조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그건 삼성 내에서 사회주의를 구현하려고 했다고 봐요. '착한 자본가'가 되고 싶어 했던 겁니다. 그걸 통해서 죄의식을 방어하려고 했고요, '착취하는 자본가'라는 평가를 듣는 걸 몹시 못견뎌했을 겁니다."

정치인들 얘기도 들어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대뜸 "환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단 열등감이 너무 심해요. 권력욕도 심하고. 자아가 힘이 약합니다. 겉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내면에서는 겁이 많아요. 겁이 많은 사람은 남의 말을 잘 안듣습니다. 특유의 독선도 있고.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권력욕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말로가 좋지 않아요. 평생을 남하고 비교하면서 살게 되니까, 건강한 사람은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데 이런 경우는 남하고 싸우면서 삽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아버지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게 관건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대권을 위해서든 개인의 인생을 위해서든 아버지 콤플렉스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얼굴이 계속 나빠질 겁니다. 그걸 뛰어넘지 못하면 대권도 못잡아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버지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무서워서 못하면 자기도 발전을 못합니다. 예를 들어, 친일파의 자손이라면 아버지가 친일파였다고 인정해야 그것에서 해방됩니다. 박근혜도 똑같아요. 인정을 해야 아버지의 잘못에서 해방이 되는데 감싸려고 들면 발목이 잡힙니다. 이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부모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해요."

그는 건강한 심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두가지로 정리했다. 

"일단, 어린시절이 좋아야되는데, 그걸 뺀다면 자기 문제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되고 용감하게 극복해야 합니다. 건강한 사회의식을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병이라는 건 개인사에서도 오지만 사회에서도 오기 때문입니다. 둘 다 의식화를 해야 하는데, 개인사를 의식화하는 과정을 자기분석이라고 한다면, 사회 문제를 의식화하는 것은 '사회의식화' 또는 '사회의식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다 해야 합니다. 기존 심리학은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화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개인문제만 다룬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무식하게 얘기하자면 마음의 병의 70%는 사회가 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자기분석이라는게 거창한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 부모와의 관계문제를 올바로 정립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령,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해 안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은 자신만큼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것이 쉽지는 않다. 그 이유는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 문제에 대해 올바로 고찰하고 정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분석을 하는 건 두 가지 과정을 거친다. 우선, 부모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부모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를 해야 한다. 부모가 나에게 잘해준 것은 무엇이고, 잘못한 점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쉬울 것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작업이기도 하다. 의식에 억눌려 있던 무의식을 들춰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자기분석에 따른 의외의 결과에 놀라기도 한다. 자상하고 좋은 부모라고 여겼던 자신의 부모가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종종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잠재해있던 이런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공정하게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해방된다.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질적인 변화가 수반된다는게 경험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김태형 씨는 심리학자로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심리학 이론의 완전한 재정립과 우리 민족의 집단심리를 외국민족의 집단심리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이와 함께 건강한 인물에 대한 분석을 더 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완벽한 성격검사지를 만들고 싶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바람이다. MBTI라는 성격검사지가 있지만 불충분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MBTI 검사는 종종 자신의 실제 성격보다 '원하는 성격'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는 미국식 심리학으로 가득찬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우려했다. 심지어 일부 진보언론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미국식 심리학을 버젓이 내걸고 선전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심리학이 철저한 부르조아 학문이에요. 철저한 미국적 패러다임과 가치관에 근거한 학문입니다. 물론 긍정적이고 좋은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대학에도 서점에도, 진보고 보수고 그런것 없이 싹 미국식 심리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상적 오염입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미국식 심리학이 대세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을 탐구하는 본연의 심리학을 만들고 싶어하는 그의 바람과 실험, 도전은 언젠가 평가받을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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