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돌아다니면서 좋은 글을 봐서 일베에도 올려본다. 김영화의 산문집 '본다'에 수록된 글이다.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할 용기


여름 대목이 다가오면 대형서점의 여행서 매대는 전쟁터가 된다. 매대의 여행서들은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여름휴가를 집에서 보내는 것은 죄악이라고.

 

어떤 위험과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여름휴가를 멋진 여행지들에서 보내라고.

인도양의 산호초, 뉴욕의 5번가, 프로방스의 작은마을, 미얀마의 석불이 당신을 기다린다고.

 

 언제가부터 여행은 신성불가침의 종교 비슷한 것이 되어서 누구도 대놓고 "저는 여행을 싫어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혹시 신입사원 모집 공고마다 나오는 해외 여행에 결격사유가 없을 것"이라는 문구의 영향일까?)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쩐지 나약하고 게으른 겁쟁이처럼 보인다.

폰 쇤부르크처럼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더라면 '우리 귀족들은 원래 여행을 안 좋아해'라고 우아하게 말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우리 같은 평민들이 쓸 수 있는 레토릭이 아니다.

 

 귀족도 뭣도 아니면서 여행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시인이 한 분 있다.

 

그분은 서울 태생으로 모든 학교를 서울에서 다녔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서울 밖으로 거의 나간 적이 없다. 해외여행도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시를 쓰고 음악을 듣고 책을 번역하고 친구를 만난다.

친구들이 해외로 나가면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사람들이 "답답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빙긋이 웃으며 "(서울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만 답한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부하고 위험을 무릅 쓴 채 여행을 떠나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는 "너무 멋진 여행이었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 하는 이들보다는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당당하게 응수하는 그가 좋다.

 새삼 당연한 얘기지만 여행을 하고 안 하고는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김영하 산문집 본다 중






생각해볼 만한 글인 것 같다. 

해외자유여행이 풀린 지 몇십 년 되지 않아서인지, 

90년대까지는 해외여행은 돈많은 사람이나 다녀온다는 편견 떄문인지,

한비야같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휘황찬란한 수사 때문인지,

젊음이 가지고 있는 방랑에 대한 본능 때문인지,

우리 사회에서 여행이 지니는 가치는 많이 부풀려져 있다.


해외여행은 특별한 경험 선사해 줄 거라고 말한다. 다른 경험보다 우위에 있는 무언가 깨달음을 주는 경험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특히나 세계일주같은 여행쯤 되면 아주아주 특별한, 직장생활 때려치고 갈 만한 환상의 경험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일베만 봐도 해외여행기는 거의 일베보증수표다. 


이 글을 한 번 봐라. 몇 개월 전에 어떤 일게이가 짤게에 자신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더라는 글을 올렸다. 

http://www.ilbe.com/index.php?_filter=search&mid=jjal&search_target=title&search_keyword=%EC%97%AC%ED%96%89&page=48&document_srl=5418815001

해외여행보다 스키장이나 제주도를 가는 게 낫다는 의견을 썼을 뿐인데 댓글로 치욕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딱 '좋은 경험' 거기까지다. 거기서 깨달음을 얻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건 개개인 마다 다르다.

대다수의 여행자들에게 여행은 단지 라이프스타일이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좋기 때문에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이들이 독서를 하듯이. 베충이들이 일베를 하듯이. 



중앙아시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을 때였다. 

그 당시 게스트가 8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 네 명이 세계일주 중이었고, 두 명이 자전거 세계여행 중이었다.

 나는 6개월 정도 여행중이었고, 나 또한 여행을 떠나기 전엔 여행이 나에게 무언가를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이 계속되면서 여행이 즐겁긴 하지만 여행 전의 나나 여행 후의 나나 달라진 것은 없다고 생각했음. 

여행을 계속 다니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꽤 많이 들었는데 대부분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25살의 나이에 기약없는 여행을 다니는 건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일이지. 

그 생각을 게스트들과 맥주 한 잔 하면서 털어놓았다. 


"여행이 나에게 특별한 걸 줄 거라 생각했는데 달라진 건 없어. 똑같아. 단지 즐거울 뿐이지"


대부분 나의 생각에 동의 했으나 그거면 됐지 뭘 바라느냐고 반문했다.


누군가에겐 독서가 취미고 누군가에겐 일베가 취미이듯이

여행은 누군가의 취미일 뿐이다. 



그렇다고 여행이 진짜 일베와 동급의 취미생활이라는 것은 아니다. 


여행은 다른 여가생활과는 다른 경험들을 주고 그것은 꽤나 유익할 수도 있음.

개인적으로 나는 제 3세계를 많이 돌아다녔기에 내가 참 행복한 나라에서, 참 행복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왔다.

그러나 겪는 사람마다 케바케이고

해외여행 다녀와서 별거없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틀리지 않다는 것임.

내 경험도 어떻게 보면  큰 깨달음이긴 하지만 사실 아프리카 기아 다큐보고 '아 시발 나 존나 행복한 놈이네'하는 깨달음과 별로 다르지도 않다.  


필력이 없어서 존나 뒤죽박죽이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여행은 꽤 좋은 경험을 주긴 하지만

각종 여행기의 과장된 수사나 그곳에 달린 댓글에서 보이는 동경은 현실과는 꽤나 동떨어져있다는 것임.

좋은 여가활동 중에 하나일 뿐.


뭐 여행 뿐이겠냐, 

모쏠아다일 땐 여친만 사귀면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일 것 같지만 막상 사겨보면 별 것도 아니지 않냐.

모든 경험이 그런 것 같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그것을 크게 보면 나중에 실망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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