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정계에 입문해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2000년에는 일리노이주 하원의원후보에 도전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으로 2004년 흑인으로선 세번째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오바마를 전 미국에 알리게 된 계기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로, 이때 오바마는 찬조연설로 일약 전국적인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이후 2007년 2월, 4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민주당 경선레이스에 돌입한다.
사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힐러리의 당내 기반이 워낙 견고한데다가 오바마는 힐러리에 비하면 거의 신인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민주당 경선은 사상 유례없는 치열한 혈전을 치뤘지만 오히려 이것이 흥행요소가 되어서 오바마를 유력 후보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일찌감치 공화당 후보로 결정된 존 매케인과 사상최초 흑백대결로 관심을 끈 이번 대선에서 8월 전당대회 이후 페일린을 지명하여 단숨에 관심을 자기 쪽으로 돌려버린 매케인에게 뒤지기도 했으나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에서 차분하고 안정적인 대응과 대안제시로 결국 승부의 흐름을 자기 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했고, 11월 4일 대선 투표일까지 별다른 이변 없이 대선은 오바마의 승리로 연결되었다.
오바마의 2008년 선거운동은 미국의 많은 정치 분석가들(오바마에 대한 지지여부를 막론하고)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본 것중 최고"라는 평을 들었는데, 초기부터 선거운동시 기본적인 메시지와 기본전략을 처음부터 확실히 정하고, 인터넷(특히 Twitter가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하여 오바마를 트위터 대통령이라고도 하기도 한다)과 지역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수많은 유권자들과 연락을 취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방대한 조직망에 짜넣어, 미국 정치 역사상 전례없는 엄청난 선거자금을 대부분 일반 유권자들로부터 벌어들였다(기부자당 기부량 평균이 약 50불). 오바마 진영은 길고 험난한 선거기간에도 큰 실수를 범하지 않았고, 기본 전략에 큰 변화 없이 충실했으며, 거대하고 효율적인 선거조직을 통해 엄청난 양의 선거자금을 벌어들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메시지를 유지해 전체적으로 매우 절제되고 안정적인 선거운동을 벌였다. 이는 경선 기간중 선거자금을 서투르게 관리해 금전적으로 홍역을 치룬 클린턴 진영이나, 중심적인 메시지를 정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공격용 메시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사라 페일린을 영입하는 도박을 했으면서도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한 매케인 진영과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그리고, 이 두 진영은 이후 내부 분열로 심한 홍역을 앓았다).
오바마의 승리를 이야기할 때 보통 미국민의 변화를 위한 갈망이나 부시에 대한 반감을 들며 이것이 정해진 승리였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의견이 있지만, 어떤 감정이나 사상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면 정치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바마는 그것을 매우 (많은 정치 분석/평론가들의 말에 따르면 역사상 최고로) 효율적으로 수행해내는 조직을 창설하고 유지해냈고, 드물게 닥쳐온 위기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해냈다. 이것은 그의 정치가와 조직의 장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물론, 이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지 W. 부시도 매우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선거운동을 해냈다).
'옛날창고 > 외울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이 힘들 떄 (0) | 2011.09.25 |
---|---|
한양대 헬프 교육과정 설명 종결 (0) | 2011.09.20 |
e (0) | 2011.09.19 |
위닝의 놀라운 인공지능(개웃김) (0) | 2011.09.19 |
전하와 각하의 뜻 (0) | 2011.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