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비율임. 영조 이후 부터 라는걸 감안하더라도 오늘날 처럼 수도권 비율이 높은걸 알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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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이야 500년간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 있어서 벼슬아치 후손들이 많아 비율이 높은것 같아.  지방을 보자면 평안도가 예상보다 높은걸 알수있고 유독 전라도가 낮은걸 알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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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구인데 농업사회에서  인구가 많다는건 그만큼 물산이 풍부하고 기름진 땅을 가졌다는 말이고 경상도와 전라도가 나란히 1등 2등을 차지하고 있어. 하지만 경상도와 비슷한 인구를 보유한 전라도는 이상하게 과거 합격자가 적은데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이 궁금증이 풀릴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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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고려에서 우리 왕조까지 또 1,000년이니, 예부터 지금까지 수 천년 동안 이도에서 장군, 재상, 고관, 문장과 덕행이 있는 선비, 공을 세웠거나 절개를 지킨 사람, 선도 불도 도가에 통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이 도를 인재의 광이라고 한다


 - 선조 이전에 국정을 맡은 사람들과 문묘에 모신 사현들이 경상도 사람.

 - 하지만, 인조 반정 이후엔 서울 사람들만 치우치게 등용함.

 - 과거에 많이 합격하기로는 여러 지방 가운데 으뜸.


좌도는 검소하게 살면서도 문학하는 선비가 많다

우도는 백성이 부유하지만, 호사하기만 좋아하고 게을러서 문학에 힘쓰지 않으므로, 훌륭하게 된 사람이 적다.그러나 간혹 기름진 땅과 메마른 땅이 섞여 있으며, 인재 또한 섞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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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


 - 의리를 밝히고 도학을 소중히 여겨, 비록 외딴 마을 쇠잔한 동네라도 문득 글 읽는 소리가 들리며, 해진 옷을 입고 항아리 창을 한 집(가난한 사람의 집)에 살아도 모두 도덕과 성명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근래에 이런 풍습이 차츰 스러져서..... 형식에 얽매이며 도량이 좁고 실질이 적다.그러면서 말다툼이나 좋아하니, 옜날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도의 여러 고을은 모두 보다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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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부

 - 강을 낀 데다 바다와도 가까워서 생선, 소금 또는 배로 통상하는 이익이 있으니, 번화한 명승지다.

 - 한양의 역관들이 이곳에 머물며 많은 재물로 왜인과 장사해 큰 이익을 얻는다


밀양은 지금이나 조선시대나 똑같은듯


상주목

 - 이 지방에는 부유한 자가 많고, 이름난 선비와 높은 관리도 많다

 - 전하는 말에,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지금의 구미)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예부터 문학하는 선비가 많다.

 - 논밭이 아주 기름져서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며, 죄를 두려워하고 간사함을 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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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는 저 때부터 유명했네 구미 출신 대표적인 인재는 일게이들도 다들 알다 싶이 원조각하가 있음.


성주목

 - 성주, 고령, 합천은 영남에서 가장 기름져, 적게 뿌리고도 많이 거둔다.

    그러므로 토박이들은 모두 부유해서 떠돌아다니는 자가 없다

 - 올바른 행실을 닦기 좋아해 집을 보전했으니.....


진주목

 - 진주는 지리산 동쪽에 있는 큰 고을로, 장수와 재상이 될 만한 인재가 많이 나왔다

 - 땅이 기름진 데다 강산의 경치도 좋으므로, 사대부들이 넉넉한 살림을 자랑하며 저택과 정자 꾸미기를 좋아한다.

    비록 벼슬은 못해도 유한공자라는 이름이 있다.

 - (예부터) 이르기를,

    '좌도에는 벼슬한 집이 많고 우도에는 부자가 많으며, 이따금 1,000년 된 이름난 마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과 멀어서, 본래 이 지방 사람이 아니면 사대부로서 갑자기 가서 살기는 쉽지 않다.



경상도에 대한 평은 대체로 칭찬 일색이네. 혹시 이중환이 경상도 사람이라 경상도에 우호적으로 적었다고 착각할 수 있을것 같은데 이중환은 충청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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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고려 태조가) 견훤을 평정한 뒤에 백제 사람을 미워해, '차령 이남의 강물은 모두 (산세와 어울리지 않고) 엇갈려 흐른다'면서, '차령 남쪽의 사람을 쓰지 말라'는 명을 남겼다..... 우리 왕조에 들어와서야 드디어 이 금령이 느슨해졌다


노래와 여색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는 습속이 있어 경박하고 간사한 사람이 많으며, 문학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

그러므로 과거에 급제해 훌륭하게 된 사람의 수가 경상도에 미치지 못하니, 문학에 힘써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걸은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타고나는 것이므로, (전라도의 인걸) 또한 적지 않다.


산천에 기이하고 훌륭한 곳이 많은데 고려 때 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크게 드러난 사람이 없었으니, 모였던 정기가 한 번쯤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이 멘 데다 풍속이 더러우니,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땅은 좋으나 노래와 여색을 좋아하는 라도 거기다 풍속이 더러워 캬 이중환이 제대로 봤노


광주목


 - 서쪽으로 나주와 통하고 풍토와 기후가 깨끗하고 밝아, 예부터 경치가 훌륭한 마을이 많고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도 많았다


그나마 광주는 칭찬하고 있지만 경상도의 경우 여러 군을 칭찬했지만 전라도는 오직 광주만 괜찮은 곳이라고 여기고 있어. 택리지는 18세기 중반에 작성된 책이라 이 시기 경상,전라 인구차이가 거의 없다는걸 봐서 조선시대 지식인들도 전라도 사람들 풍속이 더럽다는걸 알수있고 왜 전라도 과거 합격자가 타 지역보다 낮을걸 알수있어.


1줄 요약


조선시대 전라도 사람들이 과거 합격 비율이 낮은건 전라도 차별이 아닌 풍속이 경박하고 공부를 안해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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