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
- 군중은 무지하다
<군중심리>는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1841-1931)의 저작이다. 이 저작은 학술적으로 큰 함의를 지님과 동시에 대중적으로도 쉽게 소화될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학술적인 저작으로서는 드물게 국내의 일반 독자들에게도 인지도가 있는 책이다. 국내의 일반 독자들에게 이 저작이 알려진 것은 선거철에 미디어를 통해 정치와 군중의 관계에 대해 그 대략적 내용이 전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전설적 투자가인 앙드레 코스톨라니(André Kostolany)가 이 저작을 극찬하며 소개했기 때문인 것 같다.
코스톨라니의 견해는 매우 의미심장하고 유용하므로 <군중심리>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코스톨라니는 그의 달걀이론을 정립하면서 군중심리를 이야기한다. 달걀이론이란 증권 시장에서 과매도기-조정기-과매수기의 3단계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나타낸다. 주가가 바닥일 때 자기 생각이 뚜렷한 소신파들은 서서히 주식을 매수하고, 일정한 조정기간을 거쳐 주가가 상승하면, 부화뇌동파들은 갑자기 드러난 주가의 움직임에 흥분하여 여러 근거 없는 정보와 분위기에 휩쓸려 주식을 대거 매수한다. 부화뇌동파들의 과매수 기간이 바로 흔히 말하는 증권시장의 활황기이다.
이 때 소신파들은 냉정하고 조용하게 부화뇌동파들에게 주식을 넘기고 시장에서 현금을 들고 빠져나온다. 주가가 한없이 오르기를 바라는 부화뇌동파들은 소신파들로부터 넘겨받은 주식들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이 때 일반적으로 인플레나 금리인상, 거품의 우려 등 부정적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더욱더 내려가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결국 상징적인 폭락이 한번 일어나면 부화뇌동파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모든 주식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 때 투매, 즉 과매도 현상이 일어나고, 폭락한 주식은 다시 소신파들의 손에 가있게 된다. 이러한 순환이 무한반복되는 곳이 바로 증권시장이라는 것이 코스톨라니의 달걀이론의 요체이다.
앙드레 코스톨라니(1906-1999)
코스톨라니가 말한 부화뇌동파들이 바로 귀스타브 르 봉이 말하는 “군중”에 속한다. 군중은 한마디로 무지하다. 여기서 무지하다는 것은 논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며, 사건의 과정과 절차는 모르고 그 결과만을 안다는 뜻이다. “군중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의견을 가지고 있을 뿐 스스로 생각해낸 의견을 내놓는 법이 없다.” 군중은 논리적 추론을 통해 사건들을 파악하기보다는 상상력, 연상작용, 암시 등을 통해 사건들을 마음대로 해석한다. 그래서 르 봉에 따르면, 논리적인 연설을 하는 정치인보다는 막연하고 상징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정치인이 군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
때때로 정치지도자들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고등교육을 받은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런 것들은 대체로 유익하다기보다 유해한 때가 많다. 지식인은 사물을 논리적이고 전체적이고 상대적으로 보기 때문에 관대하고 우유부단해질 때가 많으므로, 군중의 마음을 얻기가 힘들다. 군중을 사로잡는 것은 “위엄”이지 논리력이 아니다. 그래서 인상적이고 격렬한 용어, 새롭고 막연해서 군중들이 제각기 해석할 수 있는 표어, 환상을 심어주는 감정적인 언어가 군중에게 큰 영향력을 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는 이성적 논증으로는 군중을 설득할 수 없는 것이다. 세밀한 논증을 요구하는 난해한 철학이나 수학을 깊이 있게 설명하면서 몇시간 내내 대중을 사로잡을 수 없는 것과도 같다. 반면, 코미디, 감동적 체험 이야기, 콘서트, 댄스 등 우리를 도취시킬 수 있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에도 군중을 집중시킬 수 있다.
이처럼 <군중심리>는 군중이 무지하다는 핵심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 타당한지의 여부를 헤아려보는 것은 인문학에 대한 세밀한 통찰을 필요로 하는 지극히 학술적인 작업이 될 것이므로, 이 서평의 범위를 넘어선다. 다만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 이 저작이 유용하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르 봉이 말하는 군중의 태도는 민족의식이나 공동체 의식이 강한 우리에게는 더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사적 공적모임들, 단체들, 동호회들, 감정을 자극하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뜨겁게 달궈졌다가 어느덧 차갑게 식어버리는 온라인 공간, 뉴스, 신문의 자극적 헤드라인 등 우리의 집단의식이 드러나는 모든 곳에서 르 봉의 군중론은 적용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주요 정치인들, 거대언론사와 대기업의 수뇌부 등 군중에게서 이익을 취해야 하는 이들은 군중의 성향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이다. 르 봉의 견해대로라면 아마도 군중에 속해있는 한 우리는 군중의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군중을 넘어서, 군중을 바라보며, 군중과 사회를 움직이는 이들이 있어왔다. 군중을 움직이는 이들은 개인주의자들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위대한 지도자들, 전략가들은 군중을 움직였지만 군중에 속해있지는 않았다. 군중에 속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고행을 요구하지만 그 대가는 클 수 있다. 르 봉의 <군중심리>가 타당하다면, 그리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면, 보다 많은 시민들이 군중에서 빠져나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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