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시론] '대입 사이버 테러'의 충격

[시론] '대입 사이버 테러'의 충격
[중앙일보 2006-02-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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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용린] 대학입시 원서접수를 둘러싼 수험생들의 사이버 테러로 야단이다. 지난해 말 대입 정시모집에서 인터넷 원서접수 대행업체들의 서버가 다운됐던 사건은 많은 수험생의 사이버 테러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자신의 원서를 낸 후 다른 사람의 원서접수를 방해하기 위해 서버를 공격했다고 한다. 이 사건의 충격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사이버 테러에 얼마나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사이버 테러의 유혹에 우리 청소년의 저항력이 이렇게 약한가 하는 점이다. 이번 사이버 테러의 수법은 아주 고전적인 것이다. 다운시키고자 하는 서버를 향해 1초에 4~5번씩 몇 시간 동안 접속을 시도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방법 2006'이라는 서버 다운 프로그램이 주로 사용됐는데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사이버 테러에 무방비 노출 상태임을 말해준다. 그나마 이 문제는 사이버 테러에 대한 예민성을 높임으로써 전문가들이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보인다.

그러나 사이버 테러에 대한 청소년의 도덕성 결여나 판단력 부족은 그리 간단한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미워하고, 견제하고,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있다. 특히 어릴수록 이런 마음이 강하다. 그러나 성장하고, 사회화가 진행되고, 교육을 받으면서 이런 마음을 견제하는 자기통제 능력이 발달하고 커지게 된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은 경쟁하되 공정하게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지만 참고 산다. 그리고 서로 협동하며, 양보하고, 희생도 하며 산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타인에 대한 배려가 풍성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이런 성숙한 도덕적 삶과 마음이 형성되는 데는 사람 간의 친밀성이 중요한 관건이다. 어릴 적에는 부모와의 애착, 커 가면서는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 어른이 돼서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친밀한 대인관계, 즉 눈으로 보고 실제로 부딪치며 겪어가는 인간관계가 도덕적 품성을 기르고 발휘하게 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사이버 세계 속에선 이런 친밀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익명사회다. 인격적인 인간관계보다 거래적인 인간관계가 압도적이며 효율적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이버 세계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은 도덕적 예민성과 판단을 연습할 기회가 결여돼 자기통제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 이것이 사이버 세계의 특성이다. 이번에 사이버 테러에 가담한 청소년의 심리와 행태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중3 여학생이 오로지 오빠를 위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범죄에 가담하고, 경찰이 전화 한번 걸자 금방 죄의식이 발현되어 해당 서버에 e-메일을 보내 잘못을 빌고 통곡하는 것들이 바로 그런 예다. 인터넷상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감각이 엄청나게 결여돼 있는 것이다.

청소년이 사이버 세계에 빠지는 비중은 점점 높아간다. 따라서 청소년의 도덕적 민감성과 판단력 결여는 가속되고 도덕적 자기통제력은 더 지체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이버 세계를 보다 인간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이버상의 행동이 실제의 삶, 즉 자신과 이웃, 그리고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사고력을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사이버 세계에서 인간관계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결과를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컴퓨터 게임부터 많은 학습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심도있게 진행돼야 한다. 인간이 결여돼 있는 사이버 세계에 참 인간관계를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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