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은 자본주의적인 소설이다. 추리소설의 형식이 완성된 고전적 추리소설부터 현대의 스파이 소설에 이르기까지 추리소설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봉건시대 또는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국가들에서 추리소설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추리소설의 탄생은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하며 추리소설의 변화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추리소설의 태동은 봉건시대에서 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하며 변화하는 두가지 사회적 요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첫째는 봉건시대가 끝나면서 신화와 미신이 과학과 이성으로 대체된다는 점이다. 중세봉건시대에도 살인을 포함한 범죄가 있었지만 그 범죄에 대응하는 방식은 근대에 비해서 비이성적이었다. 탐정들의 추리가 빛을 발하는 것은 중세의 비이성이 근대의 논리와 이성으로 대체될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사유재산에 대한 의식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고전적 추리소설의 형식이 완성된 초창기에는 초기 자본주의의 범죄형태들이 소설 속에서 구현되었다. 즉 개인의 재산과 목숨을 노리는 개인적인 범죄자들로부터 희생자(또는 그의 사유재산)를 보호하고 범죄자는 항상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

물론 완전범죄를 그린 <지푸라기 여자> 같은 작품들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범인에 대한 응징으로 끝을 맺는다. 범죄자의 음모에 맞서서 개인의 재산을 지킨다는 형식, 자본주의적인 권선징악에 가장 충실한 소설이 바로 추리소설인 것이다. 추리소설이 자본주의적인 첫번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추리소설의 형식과 구도는 20세기 초반에 완성된다. 코난도일과 앨러리 퀸, 아가사 크리스티, 반 다인, 존 딕슨 카아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이런 구도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즉 범인은 대부분 사회의 하급계층이고 희생자는 거의 상류층으로 설정된다. 많은 작품들에서 희생자의 재산을 노리는 범인을 등장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서 범인을 검거하는 탐정 역시 정식 경찰이 아니라 사회의 상류층이자 사립탐정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일로 반스는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고상한 취미생활을 하는 30대의 독신남이고, 화학과 지질학 범죄학에 대한 편집증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던 셜록 홈즈도 돈과는 관계없이 추리 자체를 즐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전추리와 하드보일드의 중간에 서있는 탐정 앨러리 퀸은 경찰력의 도움을 받는 사립탐정이고, 은퇴한 청각장애 노배우 드루리 레인은 거대한 저택에서 여생을 즐기며 우연히 사건의 수사에 참여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립탐정들이 노총각이라는 점도 한가지 재미있는 공통점이다.

이렇게 볼때 고전 추리소설을 바라보는 한가지 구도가 만들어진다. 특정인의 재산 또는 목숨을 노리는 범죄자와 그 음모에 희생되는 피해자,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사건을 꿰뚫어보는 사립탐정이라는 구도가 만들어 진다. 이 구도는 바꾸어 표현하면 사유재산을 노리는 사회 하류층의 범죄자와 그에 맞서는 상류층의 희생자와 탐정이라는 구도가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하고 범죄조직들이 등장하면서 추리소설은 한차례 변화를 맞는다. 즉 이런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듯이 추리소설 내에서도 개인적인 동기나 음모에 의한 범죄가 조직에 의한 범죄로 대체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조직적인 범죄의 목적은 한가지, 타인(또는 다른 조직)에 대한 범죄를 통해서 자신의 기반과 재산(즉 조직의 자본)을 확대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런 작품들은 타조직의 음모로부터 자신의 자본을 지켜나가는 형식을 갖는다. 추리소설이 자본주의적인 두번째 이유이다.

이런 조직적인 범죄가 국가차원으로 국가들 간에 공공연히 행해지면서 이를 반영하는 소설 즉 현대의 스파이 소설이 등장한다. 스파이 소설에서는 갈등의 요인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단순한 국가간의 갈등이나 패권다툼이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정치권의 음모나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싸움 또는 이런 요인들이 고루 뒤섞인 갈등들이 주요 소재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첩보소설에서도 중요한 부분은 자국 자본의 이익을 위한 국가의 음모이다.

이런 작품들에서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전작품의 인물들처럼 독특하거나 강렬한 캐릭터가 아니다. 범죄자체가 거대해지면서 그 범죄를 대리로 행하는 인물들은 더이상 나름대로의 동기나 가치관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개인적인 판단이나 생각들을 박탈당한채 단지 조직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인물들이다. 거대자본과 자본의 생리에 의한 개인과 자아의 파괴, 추리소설이 자본주의적인 세번째 이유이다.

추리소설의 변화는 자본주의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이후의 추리소설은 어떻게 변화해 갈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추리소설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그안에 흐르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이라는 점이다. 추리소설의 형태가 변하더라도 그 내부에서는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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