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고맙습니다. 아스퍼거는 자폐류 중에 가벼운 영역에 속하는데, 인드라 경우는 아스퍼거 중에서도 경미한 듯싶다. 모든 아스퍼거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아스퍼거 중에 약 10%만이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살릴 수 있는 반면 대다수는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인해 고통 속에서 산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면, 이 차이란 무엇인가. 민과 인드라의 두드러진 차이 중 하나가 ‘생각의 속도’이다. 인드라도 다른 이들에 비해 ‘생각의 속도’가 매우 빠르지만, 민은 인드라를 추월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영화 메멘토 주인공을 생각하면 된다. 민은 속도가 빠른 만큼 개념이 자리를 잡을 여지가 없다. 인드라 표현상 민은 매우 유물론적이고, 좌파적이고, 반골적이다. 이에 대한 인드라 생각으로는 개념이란 오감과 기억에 기초한 것이라 보고 있다. 해서, 오감이 과잉 발달했다면, 또한 기억이 짧다면 그만큼 개념이 들어설 공간이 없는 셈이다. 이는 극단적으로 좌파적이면 세상과 호흡할 시간보다는 작별한 시간이 먼저 찾아온다는 것이다.
 
아스퍼거 증상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스퍼거 뿐만 아니라 자폐류에게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예서, 아스퍼거가 그중 가벼운 증상인 만큼 인간의 인식 과정을 보다 잘 드러낸다 볼 수 있다. 아스퍼거들이 엄밀하게 보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일 따름이다. 아스퍼거들은 평범한 이들에 비해 오감에서 획득한 정보를 종합하는 데 있어서 결핍된 반면, 다른 자폐류보다는 과잉되었다. 이를 역사적으로 보자. 인디언들은 현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감에서 얻은 정보를 가급적 문자 그대로 해석했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등장하는 이름을 보자. '머리에 부는 바람', '주먹 쥐고 일어서', '열 마리 곰'... 문자 그대로이지 않은가? 또한 영화 ‘피아노’에서 보면, ‘푸른 수염’이란 연극을 보던 원주민들이 남자가 부인들의 목을 실제로 잘랐다고 여겨 착각하여 무대를 급습하는 해프닝이 발생한다. 이를 통해, 아스퍼거에 대한 인드라 추론은 다음과 같다.
 
아스퍼거란 옛 조상처럼 현대인에 비해 보다 자연과 호흡하는 친환경적인 인류이다. 헌데, 이들이 애초에 자연과 함께 산다면 이 증세가 약화되어 있을 터인데, 도시 한복판에서 살다 보니 괴리감이 심해져서 나타나는 것이다. 해서, 자연과 함께 한다면 치유가 된다. 하여, 민을 진정 치유하는 것은 ‘귀농’밖에 없다는 것이다. 허나, 먹고 살자니 도시에 남아 있어야 하는 사정이다. 헌데, 요즘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하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우리 부부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마치 우리 부부는 죄인인양 조용히 듣고 있다. 존경하는 민 담임선생님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분들이 말씀하신다. 해서, 누군가 왜 송유근 부모처럼 못 하느냐 질책한다면 울면서 조용히 듣겠다.
 
다만, 이로 인해 민의 외부에 대한 반응은 놀랍도록 빠르다. 최근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학교 음악선생이 학교 담임선생에게 민이 놀랍다고 말한 것이다. 음악선생이 무엇을 말했는데, 그 즉시 민이 답변하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겪어본 분들만이 알만큼 기지가 넘치는 답변이다. 표현력이 감탄스럽다. 어? 그런 게 있었을까? 이렇다. 한마디로 굉장히 빠르다. 문제는 너무 빨라서 개념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이다. 민은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민에게 지구력이나 인내심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민이 수학을 잘 한다지만, 특정 부문에서만 잘 할 뿐이다. 한 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제기되면 민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한다. 가령 삼차원적인 도형을 제시하면 생각할 틈도 없이 민은 답변한다. 또한 어휘 구사력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단어를 생각해낼 수 있을까 감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의 이런 모습을 보면 대체로 민은 천재다,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민이 지금 보인 능력이라면 빙산의 일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인내심을 조금이라도 요구하면 절대 못 푼다^^!
 
놀라움도 잠시 민은 이내 다른 문제에 빠져든다. 여러분이 착각한 것이다. 빙산의 일각? 아니다. 단지 민은 그 부분만 유난히 발달했을 뿐이다. 반면 평범한 이들은 대체로 종전의 개념에 사로잡혀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는 데에 매우 힘들다. 예서, 인드라는 민과 평범한 이들 중간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드라는 다른 이들보다는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 어느 정도 ‘개념’이 자리를 잡을 시간이 있다. 허나, 아스퍼거 영향으로 일정 시간이 흐르면 인드라 자신이 만든 새로운 ‘개념’을 ‘해체’시킨다. 이를 쉽게 말해, 더 이상 인드라가 만든 ‘개념’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해서, 오늘날 인드라가 생각하는 민의 문제는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하면, 왜 인드라는 평범한 이들보다 뭔가 있어 보일까. 인드라 생각으로는 ‘갈등’이 적당했기 때문이다. 갈등이 없다면 발전이 없다지만, 동시에 갈등이 심화된다 해서 사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적당한 수준의 갈등. 다시 말해, 적당한 스트레스만이 인간과 사회를 발전시킨다. 예서, 그 적당함의 기준이란 당대 자연과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면 마음이 진정되지 못해 자살할 것이고, 너무 둔감하게 반응하면 세태를 몰라 몰살당할 것이다.
 
이때, 갈등이라고 했을 때, 견디는 것은 제각각인 게다. 어떤 이들은 조그마한 갈등에서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니까. 이에 대해 인드라는 끈기, 열정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인드라가 끈기가 있다, 열정이 있다, 지구력이 있다. 뭐 하나 몰입하면 밥도 안 먹고 삼박사일 동안 해당 분야에 탐닉한다. 이런 것이 민에게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민이 이를 견딜 체력이나 정신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이러한 갈등, 혹은 모순적 관점에서 님이 말씀하신 가치투자론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드라가 볼 때, 가치투자란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다. 남들이 눈 여겨 보지 않은 주식에 투자하여 큰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치투자야말로 사실 주식투자의 본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투자란 만선이 되면 로또 당첨이요, 빈 배로 돌아오면 꽝되는 비유럽 지역과의 무역 위험도를 분산시키려는 데서 등장한 것이니까. 나누면 슬픔이 약화된다.
 
하면, 문제는 무엇인가. 오늘날 수없이 항구를 떠나는 수많은 배 중에 만선을 실고 올 배는 누구란 말인가 하는 문제이다. 어느 말이 이번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할 것인가, 누가 EPL에서 우승할 것인가, 누가 차기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는가. 이해되시는가. 정보다. 이 정보를 장악해야, 혹은 배후에서 조종해야만 가치투자론이 유효한 게다. 예서, 님은 말씀하신다. 아스퍼거가 유리한 점은, 세력들의 정보 흐름을 민감하게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드라 답변은 냉혹하다. 그 역시 세력들 마음이다. 그 아무리 아스퍼거가 정보 흐름을 예민하게 파악해도 그 즉각 정보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세력이다. 예서, 아스퍼거가 제안하는 것은, 정보 흐름을 바꾸는 비용보다 정보 흐름을 유지시키면서 아스퍼거와 타협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이다.
 
가치투자의 이면에는 ‘정보’가 있다. 하고, 그 ‘정보’를 알려고 하는 순간, 원하건, 원치 않건, 순식간에 당신은 국제유태자본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그 이후 벌어질 사태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