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래 된 책을 수리했다. 미당 서정주가 뽑아 펴낸 1950년 정음사 간 ,작고시인선.과 1953년 장문사에서 찍은 낡은 옥편 한 권, 누렇게 바래고 낡아 표지와 겉장이 나무껍질처럼 떨어져 나간 책을 수년째 방치하다가 마침 아는 사람을 통해 수리를 부탁했다. 이 두권의 책은 아버지의 서가에서 ㅇ리찌감치 눈에 띄어 유일하게 남은 책이다. 중학새이 된 나는 <작고시인선>에서 홍사용과 이장희의 시를 처음 알게 되었고 아버지의 책으로 처음 옥편 찾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는 생각날 대마다 마당 어귀로 한 자루씩 책을 끌어내 불살라 버리곤 하셨다. 책들의 장례식이었다고 할가. 깜깜한 밤, 콩 타작하는 듯 불꼬이 탁, 턱, 튀는 소리아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비친 아버지의 웅크리고 앉은 실루엣이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책이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고 그것을 불살라 버리는 것 또한 어떤 뜻이엇는지 그대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아버지에게 책은 담담히 떠나보내고 싶은 '그 무엇'이었을 것이리라. 그것이 번민과 회의인지, 아니면 젊은 날의 방황과 이상이었는지 지금도 분명히 알 순 없지만...
내게도 불살라 훨훨 떠나보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애써 떨치고 털어 버려도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들, 크게 마음먹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벌써 오래 전 강물에 떠내려가 태평양 어디에 섞여 버렸는지 알 수도 없는 묵은 상처들이 갑자기 불쑥 나타나 현재의 갈등과 얽혀 나를 흔들고 갉아먹을 때가 많다. 사랑하는 이의 비열한 행동이나 거짓말은 상대를 다치고 병들게 한다. 생각에 또 생각,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의혹들에 마음의 병가지 얻었다. 나는 뒤긑이 긴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상업적 거래가 아닌 이상 뒤긑이 없을 수가 있을가. 깔끔하고 쿨하게 감정을 정리하고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서서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가. 뒤끝이 길다는 것은 마음에 오래 담아둔다는 뜻이다.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그만큼 깊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를 망치고 다치게 하고 세상을 버리고 싶엇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를 위로하고 다독거리며 시간 속에서 천천히 치료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떠나 보내지 않느 기억들, 내 몸에 새겨지고 패인 상처들을 굳이 땜질하려 하지 않기로 한다.그것들을 어루만지며 서서히 아물어 가기를 그 속에서 내가 더 웅숭깊어지기를 바란다. 서영처 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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