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쓰려 하지 말고 네 생각을 써라”
대학교수들이 말하는 ‘명논술’ … 정형화된 ‘학원논술’ 피하고 독창적으로 명료하게 써야
“‘용사마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시오.”
2005학년도 한양대 정시논술 문제는 익숙한 ‘아이템’에서 출제됐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 중 배우 배용준과 그에 열광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을 터이기 때문. 그러나 아이템이 쉽다고 문제까지 쉬운 건 아니다. 평소 배용준의 외모와 드라마 ‘겨울연가’, 남이섬에서 눈물 흘리는 일본 아줌마들에게만 흥미를 느낀 수험생이라면, ‘비판적 분석’이란 전제조건 때문에 용사마를 외계인보다 더 낯선 존재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용사마 현상은 우리 사회가 왜곡된 민족주의적 자긍심을 갖게 했습니다. 일본의 중년여성들이 용사마에 열광했다고 해서 그것이 일본 전체가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문화가 일본의 그것보다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또한 일본 중년주부들은 전후 세대로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산 삶을 ‘겨울연가’ 식의 순수한 사랑에서 보상받으려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 그들 삶의 개선을 가져오지 않았지만요. 이렇듯 대중문화는 현대인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합니다. 비판적으로 읽지 않으면 역기능에 휘말려 현대인은 ‘우중(愚衆)’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용사마는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문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도록 요구한 겁니다.”
‘맞고 틀리고’ 떠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를 글로 보여주는 것
직접 채점에 참여한 한양대 이도흠 교수(국문과)의 말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러한 ‘비판적 사고’에 접근한 수험생은 전체의 10%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다수 수험생들은 비판을 시도하긴 했는데, 자신이 무엇을 비판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 원고지를 꾸역꾸역 채워놓았다. 이 교수는 “사고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결과”라고 평했다.
그렇다면 대학교수들이 ‘잘 쓴 글’이라고 꼽는 논술답안은 어떤 것일까.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등 주요 대학에서 논술시험 출제 및 채점에 관여한 교수들을 인터뷰했다.
교수들은 논술답안을 세 가지로 나눴다. ‘꽝논술’과 ‘명논술’, 그리고 ‘학원논술’. 꽝논술은 논술 문제의 핵심도 파악하지 못하고 내용도 문장도 엉망인 답안을 말한다. 명논술의 정의는 간단하다. ‘자신만의 창의적인 생각을 명료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한 글’이 그것이다.
사실 많은 대학의 논술 문제는 전혀 새롭지 않은 문제들이다. 2005학년도 서울대 정시논술 문제는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를 논술하시오’였다. 서강대는 ‘개인의 실존과 대중의 익명성에 관한 관점들이 나타난 제시문을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논술하라’고 주문했다. 인식론, 실존, 현대사회의 익명성 등은 철학에서 아주 오랫동안 논의된 주제다. 논술 참고서라면 충분히 다루고도 남을 ‘평이한’ 주제다. 관건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독창적으로, 명료하게, 창의적으로 표현해내느냐다. 서울대 인문대학의 김모 교수는 “논술 교과서에서 읽고 외운 듯한 글을 써내기 때문에 비슷한 답안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대학이 원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자적인 생각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식의 문제는 모든 학문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입니다. 학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객관성에 접근할 수 있는가, 이는 학자들에게도 영원한 고민거리죠. 마치 답이 있는 듯 말하지만, 사실상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이 주제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에요. 그것이 맞고 틀리고는 관계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바로 여기에 명논술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논술 참고서에 의존하지 말고, 내 생각은 무엇인지 거기에 집중하세요.”
수험생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바로 ‘학원논술’을 적어내는 것이다. 학원논술이란 논술학원에서 배운 듯한 정형화되고, 다른 수험생들과 비슷한 내용으로 채운 논술을 일컫는다. 교수들은 “학원논술은 자기만의 생각과 논리가 정립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교수들이 말하는 학원논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글의 구조가 정형화됐다는 것이다. 서강대 김영수 입학처장(사회학)은 “기승전결로 나눠 쓰고, 본문에는 주어진 지문의 일부를 인용하고, 속담이나 사자성어로 마무리하는 정형화된 ‘프레임’이 자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런 전개는 자신만의 글쓰기 특색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식상하다는 인상을 준다.
둘째, 주제와 맞지 않는 엉뚱한 사례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2005학년도 정시논술 채점에 참여한 연세대 신형기 교수(국문과)는 “미리 준비한 레고 조각을 가지고 와서 맥락에 맞지 않는데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경우를 자주 본다”고 말했다. 환경, 북핵, 인간소외, 노령화, 포스트모더니즘 등 각각의 ‘이슈’에서 써먹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한 단락씩 미리 준비한 다음 비슷한 이슈가 출제되면 어떻게든 써먹기 위해 견강부회(牽强附會)라 하더라도 글 속에 ‘레고 조각’을 우겨넣는다는 것. 신 교수는 “이는 글의 개성적 관점이 상실되는 원인이자, 전체적인 논지 전개를 흩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주제 벗어난 사례·유식한 척 어려운 말 인용 땐 ‘감점’
이렇게 미리 준비한 레고 조각은 여러 학생들에게서 똑같이 반복되기도 해 채점하는 교수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2005학년도 고려대 정시논술 출제위원장이었던 이남호 교수(국문과)는 “2005학년도 논술시험에서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나폴레옹이 한 말을 인용한 논술 시험지가 여러 장 발견됐다. 아무래도 논술학원에서 배웠거나 참고서를 보고 외운 것 같다”며 “남들과 똑같은 표현을 쓰면 자기 생각이 없다고 판단해 감점을 한다”고 말했다.
셋째, 자신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구절이나 사례를 가져다 쓰는 것이다. 신형기 교수는 “어떤 학생이 ‘장 보드리야르가 말하기를 ~라고 했다’고 썼는데 가만 읽어보니까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쓴 티가 났다”면서 “그저 유식하게 보이면 점수를 잘 받을 것처럼 오해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고 충고했다.
군더더기 문장은 글쓰기 실력과 사고력 부족 드러내는 일
대학교수들이 말하는 ‘감점을 피하는 비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지시문과 제시문을 철저하게 따르라는 것. 논술시험에서 기본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주어진 제시문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읽고 지시문을 얼마나 정확하게 따르느냐다. 2006학년도 논술문제 출제위원장을 맡은 고려대 A 교수는 “지시문과 무관한 서술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는 지시한 바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잊었거나, 논리적 정합성이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말의 낭비’ 또한 줄여야 한다. ‘지금부터 이러한 문제에 대한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겠다’는 등의 쓸데없는 문장을 줄이라는 것이다. 이남호 교수는 “곧바로 원인에 대해 서술하면 된다. 이런 문장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며 “원고지 3분의 1을 이런 ‘낭비성 문장’으로 채우는 수험생도 있는데, 이는 자신의 글쓰기 실력과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걸 드러내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별 내용도 없는데 몇 번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안 되는 ‘안 읽히는 논술’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또한 사고의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학 입시전형에서 논술 비중이 강화되는 추세임은 더 이상 의심할 나위가 없다. 수험생들 간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21세기의 대학교육에서 ‘글쓰기’는 핵심 자질이다. 때문에 21세기의 대학은 ‘글 잘 쓰는’ 인재를 선호한다. 최근 각 대학들이 ‘글쓰기 클리닉’ 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 때문이다. 서울대 글쓰기교실의 김태환 선임연구원은 “지식의 양적 팽창이 날로 심화되면서 이제는 엄청난 양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라면서 “지식의 소화는 독서력이, 새로운 지식의 창조는 글쓰기 능력이 담보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논술시험을 잘 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21세기가 요구하는 지성인이 되기 위해서 글쓰기 실력을 함양할 때다.
대학교수들이 권하는 독서법 & 글쓰기 훈련
책 내용 요약해보고 텍스트에 시비 걸어라
△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읽어라(서강대 김영수 교수·사회학)
단테 ‘신곡’이 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라고 해도 읽기에는 재미가 없다. 꾹 참고 읽어야 하는 책은 읽지 말라. 자신의 수준에 맞고 빠져들 수 있는 책을 골라 읽어라. 그렇다고 해서 무협지나 SF소설만 읽는 것은 좋지 않다. 사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책을 읽어라.
△ 텍스트를 비판하라(2006학년도 고려대 논술출제위원장)
텍스트에 시비를 걸어라. 텍스트의 논리적 비약, 미비점, 혹은 결함이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라. 논리적 정합성에 대해 평소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그렇게 자신을 표현하는 훈련이 중요하다.
△ 책 내용을 요약하라(서강대 서정목 교수·국문학)
단순히 감상을 적는 게 아니라 줄거리를 직접 요약해보라. 소설이든 철학책이든 그 내용을 꼼꼼하게 요약해봄으로써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요약하여 익숙하게 익혀놓은 내용은 실전 논술에서 충분히 활용할 기회가 올 것이다.
△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읽어라(2006학년도 고려대 논술출제위원장)
모국어를 정확히 쓸 줄 알아야 한다. 한국어의 철자나 맞춤법이 틀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수시로 글을 읽으면서 모르거나 아리송한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라.
△ 한 주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글쓰기 하라(서강대 김영수 교수·사회학)
내가 쓴 글을 고쳐 쓰고 또 고쳐 써보라.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다섯 번 정도는 다시 써보는 것이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해 한 번씩 써보는 것보다 글쓰기 실력과 사고력을 향상시켜줄 것이다. 자기 글을 계속 고쳐 쓰면서 자기 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가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옛날창고 > 인문학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증에 있어 크게 나누면 귀납적 논증과 연역적 논증이 있습니다. (0) | 2011.08.14 |
---|---|
혼자 철학사 입문하기 (0) | 2011.08.14 |
한국에서 철학 하면 굶어죽음 (0) | 2011.08.14 |
오, 나의 가짜인생 (네이버 캐스트) (0) | 2011.08.12 |
유럽 (0) | 2008.05.11 |
첫째로 귀납적 논증은 아무리 많은 개별적 사례를 끌어와도 절대적 진리가 되지는 못합니다. 특히 각 사례 중 특수한 사례가 있을 경우 사례의 특수성때문에 보편적 진리조차도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삼단논법 중 특수한 사례를 토대로 보편적 진리를 끌어오는 경우 보통 궤변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연역의 경우 앞서 말씀드린 A(대전제) B(소전제) C(결론)의 경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대전제입니다. 이 대전제는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어야 하는 절대진리로써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할 존재의 경우 그 검증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대전제로 올 수가 없습니다. 검증대상이 대전제로 들어가 소전제를 끌고 결론을 내는 형식을 순환논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연역논증의 경우 결론이 절대적 진리기는 하나 연역논증이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활용되기는 그만큼 어렵습니다. 절대진리나 절대자조차도 의심하는 포스트모던적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은 환경에 알맞는 사고의 전환을 하지 못하고 연역법을 사용하여 궤변을 만들고는 합니다.
크리스천을 비꼬는 뜻은 없지만(제 친척중에도 목사들이 있습니다 -_-) 자주 이용되는 순환논증을 한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신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끝없이 뺑뺑 도는 무한루프의 순환논증입니다. 신=성경이고 성경=신이니 성경이 왜 존재하냐고 하면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음과 사상을 떠나 결코 건전한 논리가 되지 못합니다.
이런 종류의 궤변이 적힌 뻘글들을 인터넷이나 시중에서, 심지어는 학자들 사이에서조차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데 있어 논리학만큼은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예제입니다. 특히 형이상학적인 추상적 개념에 대해 글을 쓸 때는 원칙적으로 이러한 논리를 지켜야 합니다.
다 이해하지 못하시거든 두가지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첫째로 개별사례를 통해 유추하는 귀납논증은 절대적 진리가 되지 못하고, 둘째로 연역논증의 경우 대전제는 누구나 99% 수긍하는 그런 절대적 진리나 검증된 진리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형식으로든 검증을 해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대상은 절대로 논증의 대전제가 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