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서 갔다가 일주일동안 세뇌교육 받다가 간신히 도망쳐온 경험자의 충고

1. 오랫동안 연락없던 친구가 갑자기 친한척 하면 90%
2. 약속시간이 월요일 오전이면 100%, 장소가 강남 커피숍이면 1000%
3. 고소득 알바인데 1주일간 혹은 그이상 집떠나 있어야 한다고 하면 100%
4. 능력도 없고 비실비실한 놈인데 정장 빼입고 다니면 90%
5. 만났을때 휴대폰 빌려달라고 하면 100% (세뇌교육 직전 외부와 연락을 차단하기위해서 휴대폰을 뺐음)
6. 직장 소개한다며 정확한 회사명과 주소를 안알려주면 100% (그냥 좋은 알바 혹은 직장이라고 얼버무림)
7. 다단계 아지트 도착하면 도망 쉽게 못가게 짐을 맡기라 함
8. 직장은 강남, 숙소는 성남에 있다고 하면 100%(지금은 어떤지모르겠는데 10년전에는 강남에 다단계 회사가 무지 많았고 숙소는 성남에 옥탑방같은 너저분한 방 얻어서 몇십명 남녀 혼숙했음)
9. 등록된 다단계라고 해서 사기꾼 아닌게 절대 아님(다단계 자체는 불법이 아니므로 조심)
10. 꼬붕할 친구 데려오면 무지 소중한 친구이기에 좋은사업 함께 하고 싶다고 헛소리함.
11. 꼬붕 하나 건져오면 여러명이 달라붙어 말을 걸음(꼬붕의 신상에 대해 다들 사전에 훤히 파악하고 있음)
12. 1주일 세뇌받으면 머리가 이상해짐(월요일 울고불고 하던놈도 목요일되면 태반이 만세부르고 있음)
13. 멍청하다고 다단계 빠지는게 아님. 다들조심
플라세보 효과 

플라세보(Placebo,僞藥)란 어떤 약 속에 특정한 유효 성분이 들어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환자에게 투여하는 약을 말한다. 
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소화제를 수면제로 위장하여 주면 그 약을 먹은 환자는 이내 편안하게 잠든다고 한다. 또한 열이 나는 환자에게 증류수를 해열제로 위장하여 의사가 직접 주사하면 많은 경우 실제로 열이 내린다고 한다.

프랑스의 어느 여인은 살충제를 먹고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마신 액체는 살충제가 아닌 독이 없는 다른 액체로 확인되었다. 그녀가 마신 액체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녀는 살충제를 먹었다는 심적인 충격 때문에 죽은 것이다.

담석증 수술을 받아야 할 어느 마음 약한 여인은 자기의 배에 칼을 댄다는 사실을 심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수술 준비를 위하여 수술대 위에 눕혀 놓고 차가운 알코올로 배를 소독하자, 그녀는 자기의 배에 수술칼을 대는 것으로 착각하고 쇼크사했다고 한다.

소련 철도국 직원 한 사람이 냉동차 속에서 일하다가 문이 닫혀 갇히게 되었다.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차가운 냉동차의 벽에 그는 죽음의 상태를 기록했다.

"몸이 차가워 온다..... 그래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차츰 몸이 얼어 온다.... 이제 정신이 몽롱해진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얼마 후 직원 한 사람이 냉동차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냉동차는 고장이 나서 내부의 온도가 섭씨 13도였고 산소도 충분히 있었다.인간의 오묘한 육체는 마음과 정신의 지배 아래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이것을 이용한 것이 플라세보 효과이다.

서울대 이면우 교수의 '독설'에 네티즌 '공감'

함정선기자 mint@inews24.com 
2004년 05월 20일

'W이론'의 창시자인 서울대 이면우 교수가 쓴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면우 교수는 '이공계 기피 현상은 한국이 조선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공계의 현주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글을 통해 이공계 출신자는 고시공부를 준비하고 기업에서는 교포 출신을 선호하며 대학에서는 이론교육에만 치중하고 있는 현실을 비난하고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며 이공계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글은 월간조선 5월호에 실렸다. 이 교수의 주장에 동감한 네티즌들은 각 대학교의 게시판과 포털사이트에 이 글을 확산시켰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겠다, 병역 혜택을 주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침식 제공, 선불 가'라는 술집 여종업원 호객 구호가 생각난다"고 말한 이 교수의 냉소적인 비난이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글을 읽은 네티즌들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라며 진지한 반응을 보였다. '이 글을 보니 이공계에 가기 싫어졌다'고 말하는 고교생도 있었다.

'공대생'이라고 자신을 밝힌 네티즌들은 '이 글을 볼 수록 이공계를 이끌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기술력으로 살아야 하는 나라에서 이공계를 기피하면 어쩌자는 것인가'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글의 마지막에 "살고 싶으면 해결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두면 된다"라고 말해 '이공계 기피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강조했다.

◆ 월간 조선에 소개된 이 교수의 글 전문

이공계 기피 현상은 한국이 조선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

- 근대화 시기의 이공계 선호는 예외의 시대 현상이었다 -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있는 명문도 없애겠다'는 발상은 죽음에 이르는 병

서울대는 관악산의 최고 대학

많은 사람들이 이공계 교육의 위기를 얘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공계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다. 이건 아주 간단명료한 문제다. 살고 싶으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나는 1991년 '서울공대 백서'를 발간했다. '서울대학은 국내 최고의 대학도 아니고, 세계 400위 안에도 못 드는 관악산의 최고대학'이라는 게 백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대학은 지금도 관악산의 최고 대학일 뿐이다.

2002년 대선 때 서울대 폐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관악산 골짜기의 골목대장 밖에 안 되는 대학을 없애서 무얼 어쩌겠다는 것인가? 나는 '서울공대 백서'와 1992년에 펴낸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오늘날 우리 공학교육의 위기는 5년 내지 10년 후 국가 전체의 위기로 냉큼 대두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IMF가 터지자 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족집게 같이 예견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건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이공계 교육이 왜 국가위기를 진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바퀴는 두 개다. 하나는 국가 경쟁력이고 하나는 가계부 작성이다. 돈을 잘 벌어야 하고, 번 돈을 잘 써야 하는 이치다. IMF는 벌이는 없고 가계부 작성도 엉망이었기 때문에 온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가계부 작성을 투명하게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엉망이었던 가계부 정리는 대충 끝났다. 구멍난 곳을 메우는 데 150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벌이를 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 'W 이론'에서 나는 세계 1등 기술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의 경쟁은 고스톱 판과 포커 판의 게임처럼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 2등이나 3등은 가산만 탕진할 뿐이다.

당시에는 "도대체 무슨 얘기냐"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이제 이 얘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예전에는 인구 1억 명이면 내수시장만으로 국가를 지탱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요새는 인구가 문제가 아니다. WTO 등 글로벌 네트워킹 때문에 인구가 10억 명이 넘어도 기술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이외에 팔아먹을 것이 없다.

제주도를 천혜의 관광지라고 하지만 1년에 비오는 날이 100일이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는 부적격이다. 발리나 하와이에 가 본 사람들은 내 얘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관광국가로 먹고 살기에 우리의 문화유산은 너무 빈약하다.

벌이가 없으면 아무리 가계부를 잘 써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원천은 과학기술 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 학생들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배우고 있느냐는 우리나라가 5년 후, 10년 후 어디로 갈 것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들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는가? 답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삼성전자가 핸드폰을 하나 만들 때 퀄컴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판매가의 15% 정도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설비와 부품을 일본에서 모두 수입해야 한다. 앞으로 남고 뒤로 믿지는 장사다. 그것도 삼성전자의 얘기다.

정부는 '2만 달러 국민소득 달성을 위해 5대 성장전략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독자적인 기술 없이 어떻게 5대 성장 전략 사업을 키우겠다는 말인가?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들

지난해 서울공대생 23명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적어도 100명에서 150명의 공대생이 머리를 싸매고 골방에서 법전을 외워대고 있다는 증거다. 아마 그것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나도 늦기 전에 고시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며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은 채 고시공부의 언저리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서울공대 학부생 5500명 가운데 10% 이상이 고시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물리학과에 다니던 한 학생이 다시 대입 시험을 봐서 서울의대에 입학했다. 면접장에서 제자를 만난 물리학과의 한 교수는 기가 막혀서 '물리 과목은 다 맞았겠지'라고 했다고 한다.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돈 잘 버는 의사·한의사·변호사가 되겠다고 작심한 아이들에 비교하면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에 불과하다.

나는 이 제자들이 딱하기만 하다. 눈치 빠르게 일찌감치 돈 버는 쪽으로 갈 것이지 서울공대에는 왜 들어왔다는 말인가.

서울공대나 자연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모두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특출나게 잘 했고, 과학기술을 연구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졌던 친구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가 '이공계 공부해야 이렇게 비전이 없는데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서 이공계 공부를 계속 할 거냐'면서 이 아이들을 끊임없이 고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 대덕의 연구원들은 밤 12시까지 연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연구자 학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20대, 30대에 습득한 기술과 이론들은 순식간에 과거의 것이 되고 만다. 이공계 연구인력의 정년은 대부분 40대다.

이공계 인력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뒤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을 기다리는 건 '사오정'이라는 운명이다. 과학기술 인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길에는 존경과 냉소가 뒤섞여 있다.

이들이 한국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라는 걸 어렴풋이 인식한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활동을 지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싫다. 국민의 이해 부족과 낮은 지위와 보수 때문에 이공계 출신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이런데도 당신들은 자식들을 이공계에 보낼 것인가? 의대와 한의대에, 법과대학과 상과대학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개인차원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여 사회차원의 비합리적 선택이 되는 현상을 미리 알고, 차단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몫이다.

재벌 총수들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재벌기업 총수에게 "왜 기술력도 확보되지 않은 공장들을 자꾸 늘려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의 대답이 똑같았다. "이교수, 그러니까 이공계 출신들이 눈치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거요.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총수가 이끌던 거대 재벌기업 두 개는 IMF 전후에 무너졌다. 그때 한 재벌 총수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생산성 향상, 그거 별 의미가 없어요. 5~6% 이윤이 남는데 30% 생산성 향상시켜 봐야 기껏 2% 포인트 이윤을 더 남기는 겁니다. 공무원들하고 골프 치고, 술 먹고 해서 큰 프로젝트 하나 따오면 20%, 30% 이윤이 남아요. 로비 잘하는 게 생산성 향상시키는 것보다 열 배는 쉽게 돈 버는 일입니다."

공장을 세워서 은행 돈을 빌리고, 그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덩치를 키워 정부의 특혜를 받고…. 그런 식으로 기업들은 살아왔다. 그 체질이 지금도 과히 많이 바뀌지 않았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를 나온 사람들은 재벌기업의 비서실, 기획실, 마케팅실에 근무하면서 정·관계에 포진한 동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지금도 이공계 졸업생들은 '당신들이 중요하다'는 말만 듣지 계속 벽지 공장을 돌게 된다. 이공대 졸업생들의 좌절은 여기서 시작한다. 엔지니어들이 말도 못 하고 속을 끓이는 사이에 몇 년 후배인 법대·상대 출신들은 쭉쭉 승진을 한다.

이공계 졸업생은 승진에 한계가 있다. 경영진에 많이 기용되지를 못한다. 벽지의 공장에 처박혀 있으니까 '촌닭 같아서'임원으로는 못 쓰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엔지니어들에게 프라이드가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성을 향상시켰다고, 품질개선을 했다고 총수와 간혹 악수할 기회도 있었다. 1960년대, 1970년대에 기업들이 외국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면, 영문 매뉴얼을 보고 가동시키는 일을 서울공대 출신들이 했다. 복잡한 영어 매뉴얼을 보고 다들 기겁을 하는데 그나마 서울공대생들이 그걸 해낼 수 있었다.

요즈음은 그 일을 외국에서 공부한 교포 출신들이 대체한다. 영어 실력이 서울공대생들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에서 '서울공대 나온 친구들이 기술을 알면 얼마나 더 아나, 교포 2세가 낫다. 미국에서 대학교 2학년 다니다가 왔다는데도 또랑또랑하고 매너 좋고, 아무나 만나도 섭섭하게 안 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

왜 대학들은 이렇게 기술 경쟁력이 없는 공대생들을 양산하고 있을까?서울공대는 물론이고 대다수 공과대학이 이론 교육에 치중한다.

강의 시간에 외국 이야기만 들으니 학생들은 감흥이 일지 않는다. 학생들이 '우리가 직접 실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으면 교수들은 '여기서는 못해'하고 의욕을 꺾어 버린다. 학생들은 교수들로부터 '너희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받는다.

서울공대 교수의 학위논문 80% 가까이가 이론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인 셈이다. 우리 공대생들은 실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유학 가면 다 촌닭이 된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수들은 '실험실습비도 없고, 실험장비도 없다, 어차피 나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느냐'며 항변한다.

그러니 이공계 출신들은 유학 가서도 다 이론 쪽으로 간다.

기업은 해외협동이 있을 수 없다. 수요도 없고 공급도 없다. 기업과 대학 사이에 오가는 연구비는 기업들이 이공계 학생들을 조달하려는 차원에서 에이전시한테 주는 커미션일 뿐이다.

최근 들어 서울공대의 커트라인이 웬만한 지방의 의과대학보다 떨어진다. '공대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한다는 사실이 신문에 자꾸 보도되니까 공대가 더 죽는다'며 정원 미달 사실을 숨기는 것을 대책으로 들고 나오는 교수도 있다.

입학생들의 실력이 떨어져 수학·과학 '보충반'을 편성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수준의 학생들을 데리고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하라는 말이냐'고 한탄하는 동료 교수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들어왔을 때 과연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학교육을 했느냐'고 묻는다.

최근 정부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겠다', '병역 혜택을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이런 대중적 구호를 보면 옛날 전봇대에 붙어있던 술집 여종업원 호객 구호가 생각난다. '침식 제공, 선불 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구호를 보면 "아, 저곳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건 산업기술이고, 그것을 이끌어 가는 것이 이공계 교육'이라는 사실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이 몇 개의 사탕을 나눠 주는 것으로 이공계 교육을 살려낼 방도는 없다.

내 실험실의 졸업생들 중 11명이 국제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졸업생들은 물론 교수인 나 역시 자부심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국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 이것이 우리 이공계의 현주소다.

이공계 기피의 역사적 뿌리

우리 사회는 기술을 천시하던 조선조의 문화로 회귀하고 있다. 기술을 중시하고 이공계가 우대를 받았던 1960년대 이후의 시기는 기술을 냉대한 긴 역사에서 잠시 반짝한 예외적인 시기였다. 역사 속에서 내 선배 과학자 기술자들은 모두 처절한 최후를 맞았다.

신라 무영탑의 전설은 아주 로맨틱하다. 탑 만들기에 동원된 석공은 오랫동안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스스로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탑 만드는 데 동원되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가정이 파탄난다' 불사에 동원된 석공들에게 오두막 하나씩 지어 주고 거기서 아내가 밥을 지어 주게 했을 법한데도 위정자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영탑의 전설이 주는 교훈은 '석공에게 시집가면 죽는다'였을지 모른다.

에밀레종 설화도 마찬가지다. 공명 설계는 컴퓨터 기술로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신라 시대에 종을 만들려면 보통 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독촉과 질책을 받았으면 끓는 쇳물에 제 아이를 넣어 볼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흉내만 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대대손손 축복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얻었다. 아들을 제물로 바쳐 맑고 그윽한 소리를 만들어낸 신라의 종 만드는 기술자가 그 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설화 역시 '주조 기술자가 되려면 자식을 제물로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새벽 안개처럼 은은하게 사방에 퍼지게 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기술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천민 계층이었다. 장영실을 보자. 관노 출신 천민인 장영실은 당시 지극히 예외적으로 종 6품까지 벼슬이 올랐다. 세종이 신임을 하니 문반들의 시기 질투가 대단했다. 문반들은 '천민이 종 6품까지 올라가는 것을 좌시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 아래 세종에게 온갖 간언을 했으나 세종이 듣지 않았다.

그러다 장영실이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공주의 가마 손잡이가 부러져 공주의 가마가 구르고 말았다. 왕족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면 모반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세종도 감싸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가마 손잡이에 미리 톱질을 해 놓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당시 돌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후 아무도 장영실이 어떻게 됐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과학 기술자로 출세하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관존민비

국내의 몇 개 안 되는 과학관에 가서 보면 서양 과학자들은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전부 기록돼 있는데 우리나라 과학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출생연도만 밝혀져 있을 뿐 사망연도는 물음표로 처리돼 있다. 과학 기술자들의 말로가 안 좋았다는 증거다.

나는 1990년대에 '손빨래 세탁기', '골고루 전자레인지', '따로따로 냉장고' 등을 개발해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제품 6개를 만들었다. 이 덕에 1996년에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세종문화상을 받았다.

시상식 전날 예행연습이 있다고 해서 불려갔다. 단상에 올라가는 걸음걸이가 씩씩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몇 번을 단상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연습하러 나온 여고 합창대원들 앞에서 서울공대 교수의 자존심은 말이 아니었다.

이튿날 시상식장에서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시상을 맡은 이수성 국무총리는 나와 함께 서울대학 교수로 일했던 분이다. 그의 연설이 이어지는 10여 분 내내 나는 객석을 등진 채 그를 바라보고 서 있어야 했다. 시상식의 주인은 상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맨 앞에 앉아 사진기를 들고 있던 아내는 나의 뒤통수만 실컷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상품 개발로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는 나는 수상 소감 한 마디 못해 보고 단상을 내려와야 했다.

조선 시대 장영실의 얘기가 아니라, 1996년 서울공대 교수가 겪은 일이다. '이러니 다들 관료가 되려고 하지 누가 과학기술자가 되려고 하겠나' 하며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십면초가

나는 1986년부터 우리의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1992년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우리 경제가 십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우리의 산업구조는 선진국에서 도입한 낙후기술과 설비에 저임금을 결합한 허약 체질이었다.

주문자 상표를 부착한 얼굴 없는 수출로 우리 상품은 저급품으로 분류돼서 외국의 저소득층에 팔려 나갔다. 유통망과 애프터 서비스 시스템이 없어 단골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져 실속 없는 산업팽창이 이뤄졌다.

1975년을 기점으로 우리 산업의 틀을 바꿔야 했다. 1975년까지만 해도 '저임금 양산조립'은 한국에게 보장된 독무대였다. 그렇지만 기술도입과 단순 모방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했고, 값싼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이라는 넘을 수 없는 산이 눈앞에 있었다.

1975년의 기술도입료가 전년도에 비해 갑자기 4배나 늘어났다. 이때부터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어야 했는데 우린 그걸 하지 못했다. 기술 도입료와 로열티가 계속 올라가자 기업들은 현장 작업자들만 다그쳤다.

지금도 관료와 기업인들은 '고임금 저효율이 해소되어야 경제위기가 해소된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위기가 해소된다는 말인가? 이웃집에서 카시미론 솜 이불을 팔아대는데 낡은 솜틀 기계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이것은 1975년식 사고방식이다. 제조업은 기술정보, 상품기획, 연구개발, 설계, 설비계획, 부품조달, 생산, 판매기획, 판매, 사후관리 등 대략 10단계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우리의 제조업은 상품기획과 연구개발 설계는 해외기술의 도입으로 대체했고, 판매 및 사후관리 단계는 외국 바이어들에게 기대 왔다. 우리 손으로 직접 담당하였던 것은 생산부분 뿐이다.

우리 제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응급 처방은 무엇일까. 우선 선진 제품의 모방에 심취했던 역개발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창의적인 연구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상품 기획을 해 본적이 없다.

선진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도입하고 모방설계를 했으며, 세계시장에서 소비자 구매욕이 입증된 상품만 골라 뒤늦게 기획에 착수하였다.

나는 1989년 산학협동을 통해 '하이 터치'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상품을 개발하자는 게 목표였다.

1989년에 만든 입체형 컴퓨터 키보드는 손목의 피로를 덜어 주는 제품이었다. 1993년에 출시되어 1조원 이상 팔린 맥킨토시 키보드보다 4년 앞선 기획 상품이었다. 한국의 대기업은 '이제까지 이런 제품을 본 기억이 없다'는 이유로 대량생산을 망설였다.

'그렇게 좋은 키보드라면 왜 IBM에서 아직까지 개발을 하지 않았겠는가'가 업체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우리 기업은 남의 것을 모방만 해왔기 때문에 남이 안 하는 것을 만들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자동 진공청소기를 개발했다. 최근 필립스가 제작해 국내에서 한 대에 200만원 이상으로 팔리는 자동 진공청소기와 똑같은 모양과 기능의 제품이다. 차이가 있다면 필립스는 진공청소기에 자동 감지장치를 장착했다는 것뿐이다.

자동 진공청소기의 기획 아이디어를 냈지만, 어느 전자제품 업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산학협동을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인들 머리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삼부가 이론'을 발견했다.

경영혁신은 죽지 않으려고 하는 일

신제품 개발을 위한 상품기획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기업의 관리자들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개발을 기피한다.

첫째,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이유다. 새로운 기능을 첨가하면 제품 원가가 올라가고 판매가도 높아지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량산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가 나온다. 나는 직육면체로 만든 제품의 모서리를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곡선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기업 쪽에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곡면으로 바꾸면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신뢰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는 논리다. 새로운 기능이 첨가되면 부품이 늘어나고 고장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기업 측에서는 '삼부가 이론'으로 신제품 개발에 반대했다.

어떤 기업이 일류기업인가? 일류기업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산업분야를 개척하고 최고 혹은 최초의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이 기업을 모방한 다른 기업들이 덩달아 돈을 벌어야 한다. 즉 보고 따라 하는 이류기업들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초일류기업이란 무엇인가? 국적과 사업 분야를 막론하고 전세계의 일류기업들이 초일류 기업의 기술과 상품 경영철학을 본받아서 큰 이익을 내야 한다. 초일류로 분류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 몇 개 밖에 없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한국에는 불행하게도 초일류 기업이 없다.

삼성은 일류기업이지 초일류기업이 아니다. 삼성이 '신경영'을 추진할 때 삼성 임원들의 방마다 '잭 웰치'의 책이 꽂혀 있었다. 나는 삼성 임원들에게 '삼성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잭 웰치를 쫓아갈 수 없다'고 얘기했다. 
삼성 사람들이 '왜 안 되냐'고 묻기에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잭 웰치는 현재 1등이거나 가까운 장래에 1등이 될 수 있는 2등을 빼놓고는 다 잘라냈다. 삼성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그룹이 공중 분해되어도 좋은가? 잭 웰치가 한 번에 10만 명을 감원했다. 한국적 정서를 이겨내고 수만 명을 감원시킬 자신이 있나? 잭 웰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서 직접 서류 나르고 재떨이 던지며 경영혁신에 달라붙었다. 당신 회사의 회장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 관계자들은 '신경영을 하려는 총수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고 항변했다. 나는 '경영 혁신은 총수의 의지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안 하면 죽기 때문에 하는 것이 경영혁신'이라고 했다.

그러면 삼성 관계자들은 대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죽기 살기로 경영혁신을 안 하는데 왜 삼성은 안 죽습니까?'

내 대답은 이렇다. '지금 사방에 암 걸려서 링거 꼽고 누워있는 환자들이 수두룩한데 폐병 걸린 환자를 죽일 수는 없지 않나?' 한국에서 경영혁신을 하겠다는 기업들은 대개 '전담추진반'을 둔다. 전담추진반은 보통 상무급이 팀장이 된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상급자인 사장들의 목을 자르겠는가?

IMF 경영혁신의 최대 피해자는 연구인력

IMF 이후 제일 먼저 잘려나간 것이 '전담추진반'에 연줄을 확보하지 못한 연구소의 연구인력들이었다.

총수가 직접 나서서 '우리 기업이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밤새워 고심했다면 연구인력은 제일 마지막 감원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했다.

이게 대한민국 기업의 비극이고, 나라의 비극이다. 한국은 기업의 회장이 구설수를 외면하기 때문에 직접 나서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잭 웰치는 '전담추진반'을 두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감원대상을 고르고, 자르고, 불필요한 부서와 인력을 잘라 냈다.

1997년 초 한 경영자 모임에서 내게 강연을 요청했다. 당시 '가격 경쟁력만이 살길이다'는 구호가 위력을 떨치던 시절이었다. 나는 강연을 하면서 '아직도 가격 경쟁력을 강조하는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기업활동에서 가능한 한 끝까지 피해야 할 것이 바로 경쟁사와 가격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가격경쟁이란 최후의 승자 하나만이 남을 때까지 출혈을 하면서 계속해야 하는 죽음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나서서 '죽음의 경기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아직도 외치고 있다.

우리의 제품들은 제조원가가 높은 반면에 판매가가 낮아서 가격 경쟁력을 따질 시기를 지난 지 오래다. 우리 제조업은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에 비해 높은 금융 비용과 부동산 가격, 물류 비용, 로열티, 실질 임금 등이 높아 '5고'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울타리를 친 내수시장에서 국내 가격을 높게 받아 연명해 왔다. 마치 친척들에게는 비싼 값을 받고 일반인에게는 싼 값에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긴 것과 같다.

운동경기에서 우리 팀이 계속 실점을 하면 관중들은 '작전을 바꾸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의 과거 작전은 가격 경쟁력이었으나, 가격 경쟁력 작전으로 가서는 중국은 물론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상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길은 가격을 높여서 받을 수 있는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는 길뿐이다. 제품가격을 높이고도 물건을 파는 방법은 독특한 제품, 경쟁상대가 없는 고부가 제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겠다고 몸부림을 쳐야 한다. 중국에는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은 물론 화상 네트워킹과 마케팅 능력이 있고, 일본에는 기술력이 있는데 우리가 무슨 근거로 가격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까? 해답은 창의력에 있다.

우리에게 창의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모든 걸 해 봤는데 아직까지 안 해 본 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혹시 창의력이 있을지 모른다.

두 번째는 나 스스로 경험을 통해 우리가 창의력이 많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창의력을 가지고 소규모 실험을 해서 세계시장에 성공여부를 타진한 다음 군단 병력에게 파는 식으로 가야 한다. 우리의 3대 효자 상품인 휴대폰, LCD, 자동차 산업은 5년 안에 중국의 추격을 받아 자멸할 운명이다.

'가격 결정권'만이 살길이다

글로벌 마켓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마켓을 독점 내지 선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가격 결정권만 가지면 우리는 동양의 맹주가 될 수 있다.

우리 기업이 가격결정권을 가지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내가 내놓은 아래의 물음들에 독자들이 응답을 해주었으면 한다.

'정부가 5년 이내에 이공계 기피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을 내놓을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기업이 5년 이내에 정부지원 없이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보는가?' '대학이 5년 이내에 스스로 교육개혁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학부모들이 내 자식만은 편안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고, 자녀에게 이공계 대학 진학을 권유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항목이든 "10% 이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응급실로 가야 한다. 온전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산업은 도시가스에 밀려 설 자리를 뺏긴 구공탄 공장에 비유될 수 있다. 생산성을 향상해 하루에 구공탄을 10%씩 더 찍으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날 수 있을까? 구공탄 공장의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답은 둘 다 '아니오'이다.

도시가스가 도입되는 초기에 '도시가스로 업종을 전환하라'고 했다면 연탄공장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 웃기지 마라. 온돌방이 존재하는 한, 겨울철이 존재하는 한 구공탄은 영원하다.' 연탄공장은 그렇게 전의를 불 태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음가게와 냉장고, 우마차와 용달차, LP와 CD 모두 똑같은 원리다. LP 5000장을 모은 음악 애호가에게 CD로 바꾸라고 한다면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오스트리아에 여행 갔을 때 밥 굶으면서 산 오페라 판, 유학할 때 아내에게 잔소리 들어가며 산 클래식 전집,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그래서 음악 애호가도 이렇게 외친다. "클래식이 존재하는 한, 아니 오페라가 존재하는 한 LP는 영원하다." 그러나 지금은 축음기 생산이 중단되어 더 이상 LP를 들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과거의 산업구조가 일직선인 주로를 눈감고 뛰기만 하면 되는 마차 경주였다면, 지금의 산업구조는 폴로 게임이다. 말의 눈을 절대 가리면 안 되고 주로도 일직선이 아니고 그라운드다. 어디로 갈지 모르며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빨리 설 줄 알아야 하고 세 박자 쉬었다가 달릴 수도 있고, 세 걸음 뛰다가 정지도 해야 하는 복잡한 게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마차 경주 챔피언들이 폴로 복장을 하고 나와서 설치고 있는 형국이다.

요즈음 우리의 국가 목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이다. GNP로 국가의 비전을 내세우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의식은 거의 필리핀 수준이다. 우리에게는 '이웃을 돕겠다', '인류에 혹은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이 희박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기 조차 힘들다. 원래 패러다임의 전환은 극히 일부가 시도하는 것이고 시도한 사람 중에 극히 일부가 성공한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조선조의 한 왕이 정승들에게 "광풍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초가삼간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의정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광풍이 쇠잔해지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 지도계층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사방의 문을 열어 놓으면 초가집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방 안에 있던 민초들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 바람에 날려가서 죽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끈질기게 버텨왔다. 7년 전쟁에서 절반에 가까운 민초들이 사라진 임진왜란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이공계의 위기는 역사적 뿌리가 깊다.

이공계의 위기에는 기업과 대학, 사회 전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잭 웰치의 얘기에서 거론했듯이, 이공계의 위기는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각오로 달라붙어야 할 문제다. 정책 구호나 유인책 몇 가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대학이나 이공계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기업, 우리 사회 전체가 이공계 기피현상의 최종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살고 싶으면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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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의 소개로 알바를 일주일 가량 했습니다.



어떤 분이 책을 쓰는 것을 도와드리는 것이었는데 

정말 성심성의껏 도와드렸습니다.



처음에는 2일반 정도 집에서 한글 파일을 메일로 받아서 교정을 봤는데 

제가 작업한게 마음에 드셨는지 직접 사무실에 나와서 작업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주로 수업이 없을때나 지난 토, 일 이틀을 나가서 총 5일을 일했습니다.

사장님은 47세의 분이셨는데 청바지에 나이키 맥스 운동화를 신고 다니시는

젊은 감각의 분이셨습니다.

이야기도 꽤 잘 통했던 지라 우리는 매 식사때면 반주를 하고 

일이 끝나면 소주 한두병씩 하고 헤어지고는 했습니다.



어제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마지막 맥주를 마시며 헤어졌습니다.



저에게 일을 맡기셨던 분과 그분 밑에 계신분, 사장님과 저 넷이었는데

저에게 일을 맡기셨던 분이 저에게 


지난 일주일간 너를 지켜보고 우리는 신뢰를 가졌다.
앞으로 이 계통에서 일한다면 너를 뽑아주겠다.
사람을 쓰는 일이 품성이 가장 중요해서 잠시만의 면접으로는 꾸미고 온 그들을 알수가 없어서
쉽게 뽑지 않는다.
하면서 확실한 취업 약속을 받았네요.



저 4학년 1학기임..... 제가 그 계통을 원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회사는 성장가도에 있는 보수도 좋은 회사입니다.

물론 아무나 들어갈 수 없죠.



첨에는 20만원받고 2일동안 아르바이트로 일하기로 한 거였는데

자꾸 일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20만원은 처음 직접 갔을때 받았습니다)

하는 일도 많아졌는데......

이번에 깨달은 것은 남의 일이라도 정말 내일처럼 돕게 되면

결국은 나에게 큰 덕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제가 그 쪽일을 하게 될지 뭐를 할지 모르겠지만

요즘같은 취업난에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우리 학우들 모두 힘내요.


결론은...... ASKY 
취직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뭐하나 내세울거 없는 찐따가 혼자 밥먹고 있으면,        
지나가는 애들 및 아는애들은, 저놈 혼자 밥처먹는다고 조롱할수도 있다. (무관심한 애들이 더 많지만)        
조롱까지는 안하더라도, 불쌍하게 보기도 한다. 오죽하면 같이 밥먹는 사람도 없느냐는 의미겠지.        
고시합격했거나 실력이 출중하거나 집에 돈많다거나 외모 출중한 놈이 혼자 밥먹고 있으면,        
지나가는 애들 및 아는애들은, 어라 쟤가 저기있었네 하면서 뭔가 다르게 본다.         
심지어, 그런 출중한놈이 밥먹는 자리에 끼어들어보려고 자기쪽에서 알아서 오기도 한다.        
 
결국 :        
혼자 밥먹는 놈이 우스워보이는게 아니라,        
우습게 보이는 놈이기때문에 혼자 밥먹을때 조롱당하는 것이다.   

당신을 식도락 전문가로 만들어드립니다.
스시효, 벽제갈비 이딴 데 절대 갈 필요 없습니다. 메뉴얼만 숙지하시면 됩니다.

일단 식도락 전문가가 되려면 좋아해야 하는 식당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라멘을 이야기할 때 하카다분코나 우마이도를 꼽아선 안됩니다. 
그런 곳들을 꼽는 것은 다른 식도락 전문가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제일 무난한 메뉴얼은 나고미 정도입니다. 나고미 라멘이 어디 있는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일본 라멘 대회에서 3관왕했다는 사실 정도면 기억하면 됩니다.
하카다분코는 줄 서기 싫어서 안 간다고만 말하십시요.

중국집에서는 야래향보다는 향미, 동천홍보다는 산동교자가 좋다고 해야 합니다.
이도 저도 싫으면 팔선 정도 추천드립니다.
서울 시내 중국집 중에서는 명화원을 타겟으로 잡고 위생 문제를 까대며 목란을 좋아하십시오.
눈물을 글썽거리며 장강만월의 리즈 시절이나 명화원 할아버지가 웍 잡던 시절이 그립다고 얘기하면 당신은 이미 전문가!
그리고 목란이 기복이 심해도 그럭저럭 먹을만 하기는 하지... 정도의 멘트만 날리세요. 
대가방이나 주와 비교하여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방에서는 그저 '원향재 간짜장 맛이 ㅎㄷㄷ 했더랬지'하면서 입맛을 한 번 다셔 주십시오.

냉면 이야기 할 때, 절대 함흥냉면의 함자도 꺼내시면 안 됩니다. 
냉면은 무조건 평양냉면입니다. 
이 때도 평양면옥, 우래옥 얘기하시면 안 됩니다. 서북면옥, 남포면옥 정도 가능합니다.
냉면 먹을 때 가위로 자른다고 하지 말고, 이로 끊어 먹는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입으로 툭툭 소리 좀 내 주시면 됩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옥류관에서 냉면 한 그릇 먹는 게 소원이라고 하시면 냉면 경력 20년 정도는 먹고 들어 갑니다.

이태리언 중에선.. 프리모 바치오바치 절대 안 됩니다. 몰토 정도가 괜찮겠네요.
몰토에서 유정란을 쓰는지, 옥과산 한우를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너쉐프라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고 슬쩍 웃으며 얘기하면 됩니다.
스테이크는 당연히 미디움 레어.
참고로 프렌치는 간단합니다. 걍 댓글마다 '피에르 가니에르 ㅠㅠ' 하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 중 뭐가 제일 맛있었냐는 질문에,
토속촌의 삼계탕, 명동교자의 칼국수 얘기하시면 안 됩니다.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고 시크하게 말해 주세요. 

대충 이 정도입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대맛 보면서 식도락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고 절대 고백하지 마십시오.
캐무시 당합니다.

암페타민이란 물질을 아는가? 아주 소문난 강성마약이다.        
        
청량음료는 모두 시원하고 맛있지?        
그런데 똑같은 청량음료라도 콜라하고 환타하고 맛이 다르듯,         
마약들도 그것을 맞았을때 느끼는 감정들이 약마다 다르다.        
         

따라서 암페타민이라는 놈도 그것을 맞았을때         

느낌이 독특한게 뭔가 오긴 오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암페타민을 맞았을때의 느낌은 한마디로 "사랑의 느낌"        
이라고 한다. 마음속 깊이 좋아하며 가슴아파하던 사람과 사랑이 결국 이루어져서         
신나게  행복해하는 그 순간을 연상해보면 짐작이 갈것이다.        
         

그 사랑의 감정을 직방으로, 엄청나게 또렷이 느끼도록해주는게 바로         

암페타민이다. 한마디로 "사랑의 행복함"이 아주 파파파파팍~~~ 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랑이 잘되어가는 중에 있는 사람을 보면, 맨날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낸다.         

그게 괜히 그런게 아니다. 암페타민 마약성분의 물질이 몸 안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인체 내에서 합성되는 것이다보니 “정제를 거듭한 고순도의 강성 암페타민”이         
직접 나오는건 아니고, 암페타민 계열의 물질을 주성분으로 갖는 Phenylethylamine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 것이다.        

        

실연을 한 사람들을 보면, 마음도 괴로워하고 뭘 먹어도 맛있지가 않고 의욕도 떨어지고        
공부도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아주 죽을맛으로 살지?         
그게 괜히 그런게 아니다. 마약에 취해있다가 그게 끊겼으니 난리가 날수밖에.        

        

이 얘기는, 쓸까 말까 하다가 결국 쓰게된 말인데....        
이 마약성분의 물질과 사랑의 기쁨 얘기는 규명된지가 오래인데,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 중에서는 약간 다른 측면에서 생각을 해보는         
사람도 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아니?? 그렇다면, 내 애인과의 사랑에서 느낀 나의 행복이라는 것이,         
숭고한 진심의 교류가 아니라, 그저 마약성분의 (투입되면 당연히         
기분좋을수밖에 없는 약의) 화학반응에 불과하다는거야??"        

"옛날 애인과의 사랑에 실패해서 나는 여태 계속 괴로워했었는데,         

그게 내가 특별하게 불행에 빠진게 아니었단 말이야?        
나의 고통은, 내가 특별하게 불행해져서 그런게 아니라,        
그저 마약투약받다가 중단당한 마약중독자의 고통처럼,        
<당연히 생길수밖에 없는 화학적 메커니즘에 의한 대뇌자극>이        
생긴 결과에 불과했단 말이야???"        

        

...... 이 부분에 대해서는,         
...... 뭐, 개인적으로 알아서 잘들 생각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모르는게 약인것을 괜히 말했나?        

        

(참고로,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나 강한 마음, 넓은 마음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다들 위에 말한것 같은 시각의 생각을 한번 정도씩 해보았을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저게 바로 소위 "깨달음"의 기초적 형태다)        
연봉에 맞는 차를 골라 달라는 글에는 두가지가 공통점으로 달라 붙습니다.
나이가 젊다.

미혼이다.

즉 소비가 적다를 강조 할려고 이런 이야길 붙이죠.



'전 29이고요. 연봉 5000이고요. 결혼할 생각도 없고 애인도 없습니다. 집도 부모님에게 얹혀 살고 차도 없습니다.'

즉 이렇게 말이죠.

나이가 좀 많아지면 결혼 부터 하라고 할테니...^^

여기에 이렇게 더 적으면 금상 첨화겠군요.

'친구도 없고 술도 못 마시고 취미생활도 없어 퇴근 하면 바로 집에 와서 쳐박힙니다.'



이런 사람은 일년에 천만원 지출도 안 할 테니 4000만원 여유가 되는 조건이군요.

결혼 전까진 말이죠.



이런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기업 연구소에 박사 입사 했다면 1년 후 과장급 나오니 4900은 나오겠죠.

공부 잘 하는 넘은 군대도 안 가고 졸업전 회사에서 데려가니 박사 공부까지 더 한다고 해도 입사도 비슷합니다.

제가 쏘나타 카달로그 쪼물딱 거릴때 IMF 할판이긴 했어도 기업 연구소 간 넘이 엘란을 떡 하니 끌고 왔었으니까요.

지금 물가로 말하면 당시 엘란은 2인승 베라크루즈 오픈카 인셈이었습니다.





지금의 중형차는 국민차지만 그땐 정말 중.형.차.였습니다.^^



저 녀석이 부럽긴 했으나 그 당시 초봉 1800 (지금으로 말하면 3000수준)에 쏘나타 1300 (지금 물가론 NF 2000짜리) 카달로그를 만지고 있으면 마냥 행복 했습니다.

물가는 사회를 비추는데 보통 대기업 2/3 초봉하면 중형차 기본급 오토 하나 나옵니다.

아르바이트로 월 45만원 짜리 뛰면서 공부 하다가 사회에 나가서 몇배를 만지니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었죠.

총각때니 지출도 별로 없었고 또 차살려고 착실하게 돈을 모으던 중이었는데 흰색 구형 누비라 스패건 1.8이 나오자마자 눈에 딱 박혀서 구입해서 타고 다녔죠.




이땐 세상에서 부러울께 없었는데...



흰색 스패건 1.8에 슬라이딩 선루프 옵션까지 다한 오토만 빠진 풀 옵션 차였는데 새차로 받던 기억이 나는 군요.

와이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와이프 처음 만났을때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땐 외제차도 강남에 보기 드문 시절이고 길바닥에 주로 다니는 차종이 엑셀, 엑센트, 엘란트라였고 간간히 아반떼가 보이던 시절 입니다.

신차 처음으로 나온 것을 끌고 다닐때 주변의 시선을 받는 느낌이란...^^



저 차는...지지대까지 먹어서 본넷까지 갈고 앞쪽 양쪽 휀더 다 교체 했었고...문짝 세짝 교체 했었고 뒷쪽 휀더도 판금 했었으니...그 상태에 인기없는 스패건 1.8 수동이라...중고차로 팔기도 그래서 신입 직원 운전 연습용으로 시집가버렸죠.

이 직원도 얼마 안 있어 다른차 사면서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아아...나의 첫차 추억이여...ㅠㅠ

첫사랑 만큼이나 밤잠 설치게 설레게 했던 녀석인데 어디에서 뭘 할지...

설마 지금 어디에선가 납작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_-;





누구나 젊고 미혼에 첫 월급 받고 좋아 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중고차로 샀건 새차로 샀건 첫차에 대한 추억이 있죠.

그러나...

지금 연봉에 맞는 차 이야기 하는 사람들 보단 연장자로써 이제 부터 하나 적어 봅니다.





총각때야 돈이 넘쳐나는 느낌이 듭니다.

저도 사실 주체를 못 했습니다.

새차사고 친구들과 술마시고 단란주점도 가보고 여자 소개 받아서 데이트도 하고...

가끔 카드값이니 할부금이니 잠깐 쪼들린 달도 있어 지원 받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 넘쳐 흐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4-5년 살고 나서 '결혼' 이라는 단어가 찾아 왔죠.



당장 살아야 할 집부터 찾아야 하더군요.

부모님이 지원해서 전세 가네 이런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우선 모아 둔 돈을 박박 긁어서 월세부터 시작 했습니다.

차를 또 바꾸니 데이트니 뭐니 펑펑 썼으니 통장에 잔고가 남아 있던게 이상했었죠.

그나마 결혼 해야 겠다고 생각 하고 그때부터 모은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차 할부금에 월세에 생활비에 카드값에...돈을 언제 모으나 막막해지더군요.

그나마 아내가 시집올때 모아 둔 돈이 있었고 아내가 돈을 벌고 있으니 위안을 삼았지만 얼마 안 가서 애가 덜컥 생기고 아내도 직장을 그만 두었죠.

혼자 쓸땐 몰랐는데 셋이서 쓸려니 앞이 캄캄해 집니다.

거기에 전세로 빨리 가서 매달 내는 월세를 없애려니 삶이 빡빡 하죠.





게다가 씀씀이라는 것은 다 수입에 맞아 집니다.

1800을 받으면서 빡빡하게 살던 사람의 연봉이 점차 올라 4000을 받는다고 치면 2200씩 저축이 될까요?

이건 숫자 놀음입니다.

실제로는 500만원 저축 하기도 빡빡해 집니다.

집도 당연히 커져야 하고 먹는 것도 좀 더 쓰게 되고 애 장난감도 하나 더 사주게 되다 보니 2000을 받던 4000을 받던 6000을 받던 생활비라는 것은 항상 빡빡하게 사는 것이죠.



소문으로 들은 것이지만 모 사장 아들이 1년에 9억에서 12억 정도를 쓰는데 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한답니다.

이 이야길 듣고 월 1억인데 어떻게 쓰냐라고 했더니...

젊은 남직원 녀석은 '하루 330만원 꼴인데 단란 가면 되죠.' 이러지 않나...

젊은 여직원은 '요즘 옷 천만원 짜리 많은데 몇벌만 사도...' 이러더군요.

뭐 하긴 20대에 페라리 이런거 타는거 보면...모자란다고 할 수도 있겠구나 합니다만...-_-;




집 몇채 가격이라는 차들이 집한채 가격이 되었군요. 씁쓸한...-_-;



이렇게 씀씀이란 자신의 수입에 딱 맞춰 생활하는게 인간 입니다.

연봉 5000대인 과장님급에선 생활이 여유롭다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차장님은 과장님 보고 또 이러더군요.

'나도 자네 처럼 애들이 중학생이었으면 좋겠다. 고등학생 되면...에효...'

어느 한분 여유롭다고 외칠 수가 없죠.





또 여기에 연봉이 4000이 넘어 가면 엄청난 압력을 알게 모르게 느껴집니다.

사무직들은 이 시기가 오면 생산직이 부러워 집니다.

당연히 회사로써는 이윤이 남아야 하는 장사이므로 4000을 주면 회사에 그 이상을 벌어다 줘야 합니다.

당장 내 책상 자리값 부터 들어 가니까요.

게다가 효율의 문제에서도 2000만원 받는 사람 두배의 일을 4000받는 사람이 못 한다면 떠나야죠.



단순한 보고서 하나에도 기교가 들어 가야 하니 젊었을때 왜 이리 일이 많아 하면서 어거지로 쓰던 시기와는 달라 집니다.

과장 진급이냐 아니면 여기서 끝나야 하나...그러고 나면 앞으로 뭘 해야 하나...생각이 복잡해 지는 시기죠.

사관학교 간 넘이 소령 소령...노래 부르듯...이쪽에선 과장 자리 부터는 털려져 나가느냐 붙어 있냐의 싸움이 됩니다.



회사같이 짠 곳에서 그 만큼 돈을 준다면 그 만큼의 댓가를 요구해서 주는 것이죠.

한번 입사해서 평생 직장으로 과장이 안 된다면 만년 대리로...차장이 안된다면 만년 과장으로 연차 먹어 가면서 사는게 아니죠.

초봉이 쎄니 국내에서 내노라 하는 젊은이들이 모이고 여기서 옥석을 가려 내고 잡석은 버립니다.

대리까지야 모두가 다 잡석입니다.



초반에야 공부만 잘 하는 애들이 들어 옵니다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능력이라는게 나옵니다.

공부를 잘 했다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 못 했다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죠.

회사내에서 학벌이니 어느 라인이니 이런게 좌우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능력을 발휘해서 올라 갔을때 이야기고 대리급에선 계급장(학벌) 떼고 한판 싸움이 붙어 집니다.

무조건 평가는 저 녀석 일 잘하냐 못 하냐로 나눠 집니다.





20대 경력 2-3년차는 의욕은 많으시겠지만 자신이 능력이 있나 없나도 현재 판단이 안 되실 겁니다.

죽도 만지던 2-3년차 지나서 7-8년차 가야 목검승부를 하게 됩니다.

이기고 지는 사람이 나오고 지는 사람들 중에선 목검에 맞아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죠.

10년차쯤 되면 슬슬 진검도 가끔 만져 보게 됩니다.

진검승부를 할때면 총도 만져 보게 되겠죠.

사장급이 가면 핵싸움(같은 파 우르르...)이라는 농담을 합니다만...^^



연봉이 고액이라면 그 만큼 싸움은 치열한 곳입니다.

왜냐면 그 돈 주고는 능력 있는 사람 누구든 데려다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더구나 젊은 분들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서 어떻게 판단 하고 있는지 감을 못 잡으실 겁니다.

위에 말했던 엘란을 샀던 그 친구도 초봉 3000(지금 물가로는 5000수준)을 받았으나 9년차에 짤려서 받던 연봉의 절반인 3500만원 받으면서 중소기업 연구실에 경력사원으로 들어 갔으니까요.

하루 하루가 치열해지게 됩니다.

당연히 자기 주변에 대해서 리스트 안 만들어 다니는 사람 없죠.





직장 이야긴 그만하고 생활에 대한 이야기 한번 해보죠.

제가 처음 초봉 받았을때와 지금 물가는 다르니 초봉 받았던 시절 보단 지금이 두배 이상 법니다.

물론 지금 신입하고는 1200만원 차이 밖에는 나지 않죠.

8-900차이나는 3-4년차 애덜 보단 그 댓가 이상은 일한다고 생각 합니다만 7-8년차 애들 보단 돈차이가 당연히 3-400으로 더 적어지긴 했습니다만 일에 대해선 이 녀석들 보다 자신있게 더 잘한다고 이야기 하긴 그렇습니다.

주변 동기들이 다들 배들도 나오고 머리숱도 적어지고...7-8년차 애덜은 아직은 싱싱한데 밀리는 느낌이 다소 들때도 있죠.^^



돈이 두배 이상으로 늘어나긴 했으나 생활이라...

집은 18평 아파트에서 24평 지나 30평대에서 빙빙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18평 방2 짜리에서 둘이서 생활 하던 때 보다 분명 방이 3에 집이 더 커지긴 했습니다만...안방 빼고 방 하난 애가 차지하고 있고 방 하나는 장난감이니 옷이니 잔뜩 집어 넣은 창고 입니다.

18평에 애가 없을때나 24평에 애가 기어 다닐때나 34평에 애가 커졌을때나 별반 차이가 없게 느껴집니다.

(솔찍히 18평에 둘이서 살때가 제일 넓었던 느낌이...)




애 없을때 18평에서 누울자리도 많더니만 마루를 장악한 장난감에 쇼파외엔...-_-;



월세에서 변두리 전세로 낑낑거리고 어느 정도 변두리 떠나서 중심지로 이동해서 올해 중순에 겨우 아파트 분양 받아 입주 했습니다만 월세 살던때 보다 더 끔찍한 돈을 내고 있습니다.

대출 받은거 이자만 내는데도 거의 50만원 정도 들어 갑니다.

신혼 살림때 월세 25만원에 두배는 깨지는 셈이 되었군요.-_-;

피가 5000이 붙었다지만 팔때 아니곤 제가 만지는 돈도 아니고 단지 전세 살다가 내 집 샀는데 왜 월세로 다시 온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만 납니다.

관리비에 뭐에 집 하나가 75만원돈 잡아 먹고 있죠.



여기에 자동차 절반을 할부로 끊었으니 이 녀석도 월 40만원 할부금이 나가죠. 할부가 끝나는 3년차에 차를 다시 팔면 절반 값 밖에 못 받으니 이것은 월 40만원씩 쓰는 셈이 됩니다.

집은 오르기라도 하지 이건 그냥 나가는 돈이죠.-_-;

여기에 기름값, 보험료, 세금...

이 녀석도 집만큼 잡아 먹죠.

여기에 애도 이 만큼 잡아 먹고 있습니다.ㅡㅡ;

이러고 생활비 주니 아내가 매번 돈이 없다는 이야길 하죠.



처음 월에 150 받다가 200으로 조금 있다가 인상 되었을때는 참 여유로웠는데 지금은 300이 넘어 가는데도 빡빡한 인생이 되었죠.

결혼할때의 월급 보다 130만원 정도 올랐는데 주민등록증 떼어 보면 두명이 밑으로 붙어 있어서 혼자(차까지 둘이 쓰다...) 쓰다 셋이서 써야(차까지 넷이서 써야...) 하니 사실 지금 차부터 팔아야 한다는 아내 말도 맞긴 맞습니다.

전세 살다가 대출 이자 내야 하니 지금 차를 중고로 팔고 할부금 정리 한 후 EF 중고 사면 딱 맞긴 하더군요.

허나...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게다가 애가 초등학교 들어 갈때까지 아내는 어디 어디로 이사 가야 한다지만 거기 아파트 가격은 숨통이 죄일 정도의 가격입니다.

젊었을때는 페라리가 국내 수입하면 3억이니 4억이니 이런 이야기 하면서 참 꿈 같은 이야기다 했지만 지금은 엉덩이에 이 비슷한건 깔고 앉고 있습니다.

그나마 평당 1200짜리에 앉아 있는 이유도 3년전에 분양 받았으니 4억(분양가 평당 천에 3억 5천) 이렇지 요즘 분양가가 평당 1500-1700입니다.

같은 동네에 같은 평수라도 요즘꺼는 5억 넘게 분양 하고 있죠.

아내가 말한 동네는 제가 사는 집에 가야르도 하나 얹어 줘야 갑니다.-_-;




이런게 요즘 뉘집 가격이 되었습니다. 



애가 초등학교 갈때까지는 비슷하니 중학교 갈때 옮기자고 했지만 과연 애가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 지금 회사에 남아 있을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회사에서 7년 더 버틸 자신이 없습니다.

과연 마흔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도 자신이 없을 정도이고...

과장 진급은 될련지 해도...자신이 없죠.

나가라면 나가야 하니까요.



협력업체 갔다가 헤어질때 악수 하면서 '저 쫓겨 나면 잘 좀 부탁 드립니다.' 하고 인사 하게 되죠.

물론 말이야 '아이고 오신다면야...저희야 환영입니다.' 지만...정작 쫓겨 나서 찾아 가면 이빨 빠진 개 매달아 놓고 안 두들겨 패는게 다행이겠죠.

뭐 젊은 분들이야 이렇게 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만...^^

젊은 분들은 지금 돈 있다고 주체 못 하겠다고 하지 마시고 집 장만 부터 고려하셔야 겠죠.

저 총각때의 집과 지금의 집은 차원이 다릅니다.



솔찍하게 까놓고 이야기 해서...

순수하게 월급만으로 30대 중반에 집 샀다?

이런건 요즘 서울에선 힘듭니다.

요즘 은행 담보대출 이율 4.8% 정도 되는데 제가 대출 받은 금액이 얼마 정도 되는지 계산 나올 겁니다.

자 지금까지 긴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 연봉 얼마 얼마 받는다고 봅시다.

결혼하고 애 낳고 그 연봉 중에 얼마 저금할 자신 있습니까?



저로 한번 계산을 해보죠.

예전엔 물가 때문에 2000 받았고 지금은 4000 좀 넘으니 평균 계산하면 3000만원이라는 돈이 나옵니다.

10년 따졌을때 3억입니다.

10년 동안 아예 안 써도 서울에 있는 30평대 새 아파트 못 삽니다.

IMF 때 김대중 정부에서 그동안 묶여 있던 원가 연동제를 건설경기 부양한다면서 풀어 버렸고 IMF 이전과 이후의 집값은 천지 차이 입니다.



물론 아파트 가격이 사기만 하면 무조건 오르니 마구 지어 댔었고 건설경기로 나라가 먹고 살았던 측면은 부정할 순 없습니다만...이후 폐해는 말도 아니죠.

사체 끌어다가 카드빚 매꾼 역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외국계 투자회사 그때 외화 조금 지원하고 나서 우리나라에서 뜯어 가는 것 보십시오.

그 당시 좋은 회사들도 마구 헐값에 팔아 외화 벌이 했습니다.



지금 이 동네만 해도 IMF 이전에 7천 분양 하던 아파트들이 지금은 3-4억 호가 합니다.

연봉은 따져 보면 옛날 초봉 2000에 비해 요즘 3000이면 50% 인상이지만 아파트 가격은 물가상승율이니 연봉이니 다 뛰어 넘습니다.

더구나 저때는 은행에서 80%까지도 대출 되던 시기 였습니다.

지금 머리나쁜 대통령이 또 한명 생겨서 공급 부족으로 아파트 가격이 더 장난 아니게 되었습니다.




외제차도 별로 없을때의 엘란은 정말 꿈이었습니다만...



젊었을때는 연봉 받는게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만...10년이 지나면 달라 집니다.

친구들 중에서 연봉 1300부터 연봉 3000만원까지 그 시절 달랐던 적이 있었죠.

이러니 지방 생산직 가는 친구와 엘란 타면서 폼나게 사는 인생이 차이가 나게 보였지만 지금은 제가 볼땐 역전 되었습니다.

1300 받던 친구는 지방으로 가면서 다행이 비싼 집값을 피해서 아파트 장만 하고 현재는 천안으로 이사 했지만 그 전에 살던 수원 영통 아파트를 3억정도에 팔았었고 연봉 3500만원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때 당시 3000 받았던 친구는 지금 중소기업 연구소로 옮겨서 연봉 3500에 대출금 6천 포함해서 1억 5천짜리 전세 삽니다.



제 동기들만 봐도 10년차 이상이 되면 이렇게 자산을 어떻게 재테크 했냐에 따라 5천 전세 사는 사람 부터 분당에 입성하여 39평 사는 사람까지 달라 집니다.

사실 이 시기가 오면 연봉은 크게 좌우를 안 합니다.

왜냐면 2500을 받던 5000을 받던 다 삶이 거기에 맞춰서 살아 가게 됩니다.

2500 받으면서 애 둘 낳아서 버둥거리고 다 살게 되어 있고 5000 받아서 애 하난데도 그 넘도 똑같이 버둥거리면서 삽니다.

EF 중고로 800주고 산 넘은 차안에서 서서 가고 3000주고 TG 산 넘은 차 안에서 누워서 운전합니까?

다 거기서 거기인 셈이죠.

이렇게 다 맞춰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부터의 평가는 연봉이 아니죠.

직장에 과연 언제까지 살아 남느냐...노후엔 어떻게 먹고 사냐...자산은 얼마나...애는 공부 잘 하냐 못 하냐...과연 몇세까지 멀쩡하게 살다 가느냐...마누라랑 금술은 좋냐 안 좋냐...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하나 들어 간 걸로 인생이 결정 되고 끝나는 거라면 얼마나 삶이 허무합니까?

회사 입사 하나로 인생이 결정 나는 것도 아닙니다.

삶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죠.





제 남은 바램은 직장에서 오래 살아 남으면서 연봉 얼마 받기? 이런게 아닙니다.

우선 자식 녀석이 공부를 좀 잘했으면 하는 바램과...

그 녀석 장가갈때까지 연봉 1000만원 일이 되더라도 일을 계속 하고 있는 바램과...

와이프에게 이혼 안 당하고 황혼까지 살 바램과...

자식 넘 장가 갈때 대출 받아 전세금 얼마 보태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퇴직금과 아파트 역 모기지론으로 남은 인생 편안하게 마감할때까지 손 안 벌리고 사는 바램입니다.
퍼온 글입니다. 

출처는 http://clien.career.co.kr/cs2/bbs/board.php?bo_table=lecture&wr_id=55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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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심심치않게 자게에서 한비야씨에 관련된 글이 언급되네요... 제가 예전에 써놓은 글을, 여자친구분들이 배낭여행 가실때 한비야 따라하지 말라고 보여주시는 분들이 있어 놀랐습니다.



문제는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을 지적해주시지 않으면, 대부분 배낭여행을 모르는 한비야 팬분들은 반발하고 받아들이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새롭게 알게된 내용등을 포함하여 한비야씨의 여행스타일과 진정성에 대해 몇가지 지적해보고 싶습니다. 배낭여행을 계획중인 여성분들에게 한비야씨 관련 설득을 할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한비야씨 글들의 진정성



한비야씨의 여행에세이집, "바람의 딸 지구 세바퀴반" 시리즈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혹은 의혹이 제기되는 문제들만 해도 다음과 같습니다.



1. 본인의 이름부터가 거짓

2. 무려 2명의 현지인 테러리스트와 사랑을 나눔

3. 중국견문록에서 호텔앞 군고구마 장수를 소개했는데, 완전한 허구임

4. 볼리비아 루레나바께 Bella Vista 호텔 에피소드건 미화

5. 외국어를 실제 구사하는지, 실제 가보고 쓴건지 의심스러운 일화들

6. 히치하이킹 관련 에피소드의 진정성

7. 기타 습관적 거짓말들



1. 책에서는 본명 "한비야"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날 비, 들 야자를 쓴다고 나와있으나, 실제로 한비야씨의 본명은 "한인순"이며 "한비야"라는 이름은 본인의 세례명인 Pia에서 따와 연예인처럼 스스로 개명한 이름입니다.


2. 1권 첫장과 4권 마지막에 무려 다른 2명의 현지인 테러리스트와 사랑을 나눴다고 한비야씨는 밝히고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세상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존재하긴 힘들겠죠.) 실제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완전한 날조" / "삐끼한테 당한 것"이라는 두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현지인들은 보통 외국인 여성을 꼬실때 본인은 "의사" "변호사" 등 상류층 사람이라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그러니 "책을 팔기 위해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날조"했거나, 만약 한비야씨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본인을 변호사이며 테러리스트라고 소개한 현지인 삐끼"에게 낚인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조차 "해외여행의 로맨스"로 포장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외국경험이 없는 한국여성분들에게 환상 심어주기 딱 좋은 내용입니다.)

3. 한비야씨의 중국견문록의 무대는 북경의 한인촌인 "우다코"입니다. 책의 서문과 추천사, 에피소드등 여러곳에서 현지 호텔앞에서 군고구마를 팔던 소녀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당시 우다코 현지에서는 어떤 호텔 앞에서도 상행위가 불가능했습니다. 즉, 흥미를 위해 완전히 날조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한비야씨와 비슷한 시기 현지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주위의 중국어전공자 분들에게 여쭤보면 쉽게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런 지어낸 내용들이 얼마나 더 많은지는 한비야씨 본인만이 알 것입니다.

4. 한비야씨가 볼리비아 루레나바께 현지에서 호텔을 하시는 한인 부부를 만났던 일화에서, 헤어지기 직전 사모님께서 방금 싼 따끈한 김밥을 건네주셔서 감동했다는 부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비야씨 다음으로 현지에 방문한 한국인여행자 J님이 관련된 건을 물어보니, 사모님은 "김밥을 건네줬다는 일은 사실이 아니다(없었던 일을 지어내서 책에 적은것)"이라고 말씀하셔서 엄청나게 실망했다고 합니다. (현지 한인 호텔은 Bella Vista라고 론리플래닛에도 소개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곳입니다.)

5. 한비야씨는 스스로 5~6개국어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외국어를 제대로 구사하기는 하는건지 의심스러운 내용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지금은 수정되었지만 예전판에서는 계속 "Guide"를 "가이더"라고 발음하고 있으며, 현지발음과 완전히 동떨어진 지명이 자주 소개됩니다. (예: 멕시코 Oaxaca"와하까/오아하까" -> 오악사까. 책속에는 현지인이 "오악사까를 위해 건배!"하는 식으로 말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중남미여행자들이 듣고 폭소를 터트리는 대목이죠.) 현지 언어의 읽기 쓰기가 불가능한 언어실력이라면, 가보지 않은 곳의 지명을 발음을 상상해서 쓰다가 틀렸고 관련 에피소드는 전부 창작이거나, 혹은 대필작가가 이름을 받아 옮겨적다가 실수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6. 한비야씨는 남미대륙의 3분의 1을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현지를 직접 여행했고 스페인어권에서 4년간 체류한 글쓴이의 입장에서 보면 한비야씨의 에피소드가 이상한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등장하는 트럭기사의 이름은 모두 스페인어에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거나 발음이 이상하며(예:Consuelo콘수엘로->콘살로, Sergio세르히오->세지오, Edgardo에드가르도->에르와르도. 보통 히치를 하게 되면 기사와 연락처를 주고 받는 것이 예의이며, 한비야씨 책에서도 이름/연락처를 받았다고 나와있습니다. 이름의 스펠링을 보고 책에 소개했으면 절대 저런 발음이 나올 수가 없겠죠. 모두 대충 지어낸 이름들이거나, 한비야씨 스페인어가 읽기/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수준이거나 둘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사진이 있는 트럭기사는 연락처를 교환하자고 적어놨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이름없는 트럭기사는 로사리오->부에노스아이레스 라는 루트로 돌아서 이동하는데 괜찮느냐고 해서 한비야씨가 동의하여 트럭에 탑승하는데, 뜬금없이 어떤 호수 앞에서 한비야씨를 내리게 하더니 다른 트럭을 섭외해줍니다. 한비야씨가 히치하이킹 스토리를 길게 지어내다가 헛점이 발생한 부분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 스페인어는 소리나는대로 읽고 쓰는 언어이며, 영어와 같은 알파벳을 사용하기 때문에 읽기 쓰기 소리내기는 정말 쉽습니다. 한비야씨가 기본적인 읽기 쓰기 사람이름 발음하기 조차 불가능한 스페인어 실력으로 여행을 했다면, 내용의 반이상은 지어냈거나 대필작가 혹은 스페인어 전공자의 도움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7. 한비야씨의 평상시 발언중에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40kg 배낭을 메고 걸어서 여행" "2일에 1번 잔다" "1년에 100권의 책을 읽는다" ...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어렵군요. 완전군장 20kg의 무게를 아는 한국남자라면 "여성의 몸으로 40kg 배낭메고 걸어서 여행했다"는게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인지 아실 것입니다. 2일에 한번 잘 정도로 바쁘면서 전세계 구호현장을 누비면서도 1년에 100권의 책을 읽는 인물... 이런 식으로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인물이라면 그의 저서나 발언등의 내용 대부분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한비야씨 여행스타일의 문제



1. 국경 밀입국을 거리낌 없이 함(온두라스/캄보디아 등)

2. 군사작전이 실시중인 위험지구/출입금지 구역마다 들어가서 기념사진 촬영

3. 본인의 버섯(mushroom=마약) 체험담을 여행기에 소개

4. 히치하이킹과 현지인집 숙박을 매우 즐김

5. 만나는 현지인/외국인여행자마다 로맨스가 생김

6. 현지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성의식



1. 국경 밀입국은 어떤 여행자에게도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실제 배낭여행시에는 어떠한 나라에서도 국경을 통과할때의 긴장감은 장난이 아니며, 한국대사관이 없는 곳에서 여권을 잃어버려 오도가도 못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는 여행자들도 있고(이런 경우 인근국가의 한국대사관에서 도움을 주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국경에서 의사소통이 잘못되어 추방/체포/구금/구타를 당하는 여행자들도 있습니다. 만약 밀입국시 적발되면, 현지 한인/다른 여행자에게도 엄청난 민폐를 끼치게 되며, 심지어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한비야씨가 길을 잘못 드는등 실수로 밀입국을 한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했다는게 되겠습니다.) 실제 배낭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한비야씨처럼 밀입국에 대해 저렇게 함부로 얘기하지 않으며, 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2.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한비야씨는 군사작전이 실행중인 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죽을뻔 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런 내용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백인 여행자가 한국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때 본인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학살현장을 유유히 지나다니며 사진을 찍었다면? 혹은 야생동물 찾는다고 DMZ 비무장 지대를 철책 뚫고 들어가서 사진찍고 다닌다면? 상대쪽 입장에서 보면 한비야씨는 이와 같은 일들을 저지른 것입니다. 저렇게 금지된 위험구역을 본인의 호승심으로 가보고 그 내용을 자랑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개념이 없을 뿐인 것입니다. 샘물교회의 위험지구 선교행위나, 한비야씨의 위험지구 배낭여행이나, 그 귀결은 체포/납치/인질극/총살로 이어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3. 한비야씨는 멕시코 여행시 "버섯먹고 영혼여행" 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본인의 버섯 체험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중에도 "환각제"라는 사실을 밝히는데, 특정한 성분의 버섯(mushroom)은 마리화나, LSD, 코카인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마약으로 분류됩니다. 몇년전 해외여행시의 마리화나 체험담을 적었다가 구속된 블로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비야씨는 무려 200만부를 팔아치운 본인의 "청소년 권장도서"에서 스스로 마약체험담을 소개하고 있군요. (물론, 다른 이에게 하면 안된다는 경고 따위는 없습니다.)



4. 히치하이킹과 현지인 숙박은 대부분 "여행경비 절감"을 목적으로 합니다. 특히 개발도상국, 중남미-동남아-인도-아프리카 같은 위험한 여행지에서는 본인의 목숨을 내놓고 해야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난한 현지인집에 묵으면서 숙식을 제공받는 것은 대단한 민폐가 아닐 수 없으며(개발도상국 대도시를 벗어나면 한달 수입 30달러가 채 안되는 집이 허다하며, 심지어 직업이 없어 노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많은 배낭여행자들은 실제로 현지인집에 초대를 받아도 대단히 미안해하고 불편함을 느낍니다. 한비야씨의 방송에서 발언을 보면 대충 길 몰라서 헤매고 있으면 현지인들이 집으로 데려가서 재워준다고 하죠. 실제로 한비야씨처럼 여행하는 분들 보면 이런 식으로 쉽게 현지인집에서 무료 숙식제공을 받습니다), 선심쓰듯 큰 돈을 주고 나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그런 이후 "외국인은 쉽게 돈을 준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어, 많은 현지인들이 강도-삐끼-사기꾼화 될 수 있습니다. 웃기는 것은 배낭여행자들이 "본인은 학생이니 돈이 없다 깎아달라"와 같은 식으로 흥정을 시도하면, 현지인들은 "그래도 너는 여기까지 올 비행기표는 살 수 있었잖아. 우린 평생 일해서 모아도 비행기표 하나 살 수 없다고!"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실제로 눈앞에서 저런 말을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한비야씨는 히치하이킹시 강도나 성폭행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하지 않았고, 히치하이킹 에피소드의 제목은 무려 "경우에 따라 위험한 히치하이킹"입니다. 더더군다나, 이 에피소드들이 사실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5. 개발도상국 여행지의 현지인들은 대부분 "외국인=돈"이라고 인식합니다. 여기에 여성여행자들이면 "성"이 추가됩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니, 어떻게든 꼬셔서 하룻밤 데리고 자보고, 잘되면 그 외국인 여성의 돈을 이용해서 호텔이나 식당 등을 차려서 팔자 고쳐보자는게 이들의 심리입니다(특히 중동이나 인도여행해본 분들이라면 아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보는 여자에게 아름답다, 결혼하자며 엄청 들이대고 키스해달라는 식으로 접근을 합니다. 그런데 한비야씨는 가는 곳마다 이런 사람들에게 구강 kiss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하게 말해 현지인 삐끼와 놀아난 것이라 볼 수도 있고, 이런 식의 여행태도는 후배 여성여행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게 됩니다(한국여자=쉽다 이런 공식으로 더 많은 현지인들이 try하게 됩니다). 더욱이 서양권 배낭여행자의 경우 여행중 하룻밤 상대를 찾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가는데 마다 이런 이들과 로맨스가 생긴다는 것은 정상적인 보통의 한국여성이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외국인 여행자와 우연히 루트가 겹쳐 몇달씩 같이 여행하는 경우라면 모르겠으나, 보통 현지인과는 한곳에 아주 장기체류를 하지 않는 이상 썸씽이 생길 시간조차 없습니다. 한 여행지 체류를 길어야 일이주, 아무리 많아야 한달 정도 체류하는데 과연 현지인과 한비야씨가 말하는 불꽃같은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할까요?)



6. 각 나라마다 문화와 풍습이 다르고 이런 부분은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사찰 안에 나시나 미니스커트 입고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듯이, 무슬림 사원 같은 곳에 치마나 반바지를 입고 들어가도 안될 것입니다. 남녀가 한방에 있다는 것은 전세계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성" 적인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비야씨 책에서 소개하는 에피소드 중에서 현지인을 방으로 들여서 마사지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마사지사가 엄한데를 만졌는데, 마사지를 잘해서 본인의 가슴도 만지게 해주고, "너 밤일 잘해?"라고 묻자 흥분한 마사지사가 이따 다시 오겠다고 하니 한비야씨는 깔깔거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 마사지사 정력도 약해 보이는데 뱀술이라도 먹고 오는 것 아냐?" (한비야씨 책에 소개된 내용이므로, 실제 저렇게 써있는지 확인이 가능합니다.) 누군가 한비야씨를 따라 마사지사(혹은 그에 준하는 일반현지인)을 방에 들였다면, 성폭행 등을 당할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현지인이 성추행하려고 여성여행자의 몸을 더듬는데 "너 밤일 잘해?"와 같이 대응할 수 있는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한비야씨의 영향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블로거분의 글을 보면 인도 바라나시에서 한국여대생 2명이 현지 마사지사를 방으로 불러 마사지 받겠다고 하여 기겁하고 말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듯 한비야씨의 배낭여행 스타일은, 같은 배낭여행자의 시선에서도 결코 좋게 봐줄 수가 없습니다. 남들 하지말라는 것, 위험하다고 말리거나 윤리적/도덕적 문제가 있는 행동들을 저렇게 서슴없이 하고, 그 내용을 자랑스럽게 출판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결코 한비야씨를 바람직한 인물로 보지 않습니다.



문제는 많은 여성들이 한비야씨의 여행기를 읽고, 상상속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그분을 무려 "삶/여행의 역할모델"로 삼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잘못된 배낭여행의 스타일을 전수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비야씨의 책은 여행기지 여행가이드북이 아니므로 문제없다"는 분들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이드북이 아니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대부분의 가이드북은 가격과 숙소정보, 볼거리 소개 위주로 나와있지 "여행자의 윤리"나 "위험회피", "바람직한 여행모델"에 대해서 기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한비야씨 책을 읽으면 "우와 이렇게 다니는 사람도 있구나=이렇게 다녀도 되는구나"와 같은 인식을 무의식중에 받게 됩니다.)



우리의 누나 여동생들을 보호하려고 "한비야씨 여행기는 사기이니 읽지마라/믿지마라" 고 아무리 말해도, 구체적인 실례를 들지 않으면 그네들은 오히려 반발을 할 뿐입니다.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주위 여성분들이 배낭여행을 떠나려 한다면, 여행전에 위와 같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 절대 한비야씨를 따라하는 사람이 없도록 "배낭여행의 현실"을 잘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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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http://afterdan.kr/40

이거 보고 개실망...

이런 사람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자기가 뭐라도 한 양 떠들어댔다는 건가.... 

갑자기 가증스러워지넹..

우리학교에는 설마 이 사람꺼 읽고 배낭여행 떠나는 사람은 없겠죠? 

아니 책을 안읽어봤어도 책 내용이 병맛이라는 걸 쉽게 알겠는데 이걸 곧이곧대로 믿고

배낭여행가는 사람 있나??? (무슨 테러리스트랑 사랑을 나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삐끼한테

당했으면 몰라ㅋㅋㅋㅋㅋㅋㅋㅋ )
1. 눈은 태어날때부터 그 크기가 똑같지만, 코와 귀는 계속해서 자란다.



02. 사람 몸에서 가장 강한 근육은 혀다.



03. 사람은 스스로 숨을 쉬지 않는 방법으로 자살할 수 없다.



04. 북극곰은 모두 왼손잡이다.



05. 북극곰의 가죽은 검은색이다. 그리고 털은 투명하다.



06. 코끼리만이 유일하게 점프할 수 없는 동물이다.



07. 타조의 안구는 뇌보다 크다.



08. 사람은 평생동안 수면중에 평균 8마리의 거미를 먹는다.



09. 매년 원숭이에게 살해당하는 사람이 비행기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



10. 셰익스피어는 '암살(assassination)'과 '충돌하다(bump)'라는 단어를 발명했다.



11. 당신이 만약 어두운 방에서 금붕어를 기른다면, 결국 흰색으로 변하게 될것이다.



12. 여자가 남자보다 거의 두 배 정도 눈을 더 깜박거린다.



13.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에 비해 평균 9년정도 수명이 길다.



14. 모든 대륙의 이름(영어)은 그 시작과 끝이 같은 철자이다. (예, Asia)



15. 달팽이는 3년동안 잘 수 있다.



16. 미국보다 중국이 영어 회화가 가능한 사람 수가 많다.



17. 땅콩은 다이너마이트의 재료 중 하나다.



18. 영화 '펄프픽션(Pulp Fiction)'에 나오는 모든 시계의 시각은 4시 20분에 멈춰있다.



19. 아몬드는 복숭아과의 한 종류다.



20. 눈을 뜬 채로는 재채기 할 수 없다.




21. 어떠한 종이도 7번 이상 반으로 접을 수 없다.



22. 트럼프카드에서 하트의 킹만이 수염이 없는 킹이다.



23. 아침 잠에서 깰 때, 커피보다 사과를 먹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24. 집안에 떠도는 먼지 중 대부분은 죽은 피부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25. 진주는 식초에 녹는다.



26. 6년 9개월동안 쉬지않고 뀌는 방귀의 에너지는 원자폭탄과 맞먹는다.



27. 심장의 압력은 피를 약 10미터 가까이 수직으로 뿜어낼 수 있을 정도다.



28. 상하지 않는 유일한 음식은 꿀이다.



29. 코카콜라는 원래 녹색이다.



30. 남자는 여자보다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보다 청력과 후각이 좋다.



31. 세상에서 가장 어린 부모는 1910년 각각 8세와 9세로 중국에 살았다.



32. 가장 어렸던 교황의 나이는 11세였다.



33. TYPEWRITER는 자판 맨 윗줄의 단어로 쓸 수 있는 가장 긴 단어다.



34. 새우의 심장은 머리에 있다.



35. 돼지는 하늘을 볼 수 없다.



36. 재채기를 너무 세게 하면 갈비뼈가 부러질 수 있다.



37. 재채기를 참으면 뇌와 목의 혈관이 터져 죽을 수도 있다.



38. 한시간 동안 헤드폰을 쓰고 있으면 귀에 있는 박테리아를 700배 증식시킬 수 있다.



39. "The quick brown fox jumps over the lazy dog" 이 문장은 모든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다.



40. 사람은 자신의 혀로 팔꿈치를 핥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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